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相生의 新시장질서

이동근 <산자부 산업정책국장>

“사회 공통의 부는 개별적으로 가지고 있는 재산에 달린 것이 아니라 사회 모두가 함께 보여줄 수 있는 생산성에 달려 있다. 따라서 국가의 힘은 서로를 운명공동체로 여기는 신뢰에 있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이념적 토대를 제공하며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라이히의 저서 ‘미래를 위한 약속’의 한 구절이다. 대기업과 中企는 운명공동체 라이히 전 장관의 언급은 우리나라의 대ㆍ중소기업 관계를 새로 정립하는 데 있어서도 참고가 될 만하다. 한국경제의 성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각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네트워크의 생산성에 달려 있고, 상호신뢰 없이는 대ㆍ중소 네트워크의 경쟁력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대ㆍ중소기업간 관계는 이 같은 이상(理想)에 비춰보면 아직은 미흡하기 이를 데 없다. 지난 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현상은 일부 개선되는 기미를 보였으나 2002년부터 다시 반전했다. 대ㆍ중소기업간 2001년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 차이는 1.5%포인트에 머물렀지만 2004년에는 5.2%포인트로 그 차이가 확대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 또한 상호신뢰에 바탕을 둔 대등하고 수평적인 파트너 관계라기보다 수직적 하청관계의 양상이 아직도 뚜렷한 실정이다. 일부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조차도 대기업의 우월한 시장지배력 아래 ‘기업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양극화 해소와 상생협력에 대해 대기업ㆍ중소기업 관계자 할 것 없이 이구동성으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이를 간과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실제 대기업에도 매우 중요하다. 제조업 생산원가의 63%를 부품ㆍ소재 부문이 차지하고 있으며 부품ㆍ소재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없으면 대기업의 경쟁력도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ㆍ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은 국민경제의 지속성장 측면에서도 간과할 수 없다. 중소기업의 기반이 붕괴되면 대일(對日) 무역적자 및 우리 경제의 일본의존도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ㆍ중소 상생협력은 사회통합을 공고히 하는 데도 한몫한다. 대기업의 60% 수준으로 추락한 중소기업의 임금수준이 올라가 양측간 임금격차가 줄면 실업률 감소에 적잖은 기여를 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노는 사람이 줄고 사회의 부가 증대되면 사회통합은 가속화하게 마련이다. 다행히 5월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7대 그룹 총수와 중소기업 대표, 그리고 정부관계자 등이 모여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의 새로운 시장질서를 창출하기로 합의한 이후 양측간 상생협력의 기운이 고조되며 재계 전체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회의 이후 삼성ㆍLGㆍ현대차ㆍSK 등의 총수들이 강력한 상생의지를 나타내 현금결제 확대, 협력 중소기업과의 상생마스터플랜 발표 등 긍정적인 성과가 잇따르고 있다. 3일 산업자원부는 장관과 30대 그룹 구조조정본부장 회의를 통해 대ㆍ중소 상생협력 방안이 이미 이들 그룹과 계열사에서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대ㆍ중소 상생협력의 새로운 시장질서를 구축하는 데 있어 세 가지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첫째, 대ㆍ중소기업간 협력은 시장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스스로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노 대통령이 지난번 회의에서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스스로의 협력이 중요함을 시사한 것이다. 협력통해 경쟁력 키워나가야 둘째, 상호협력은 경쟁력을 전제로 해야 한다. 한쪽의 일방적인 경쟁력 높이기가 상대방의 경쟁력을 깎아먹는다면 상생협력의 의미는 사라지고 만다. 특히 중소기업은 기술ㆍ품질 등에서 대기업의 손색 없는 파트너로 자리잡아야 한다. 셋째, 상생협력은 상호신뢰 없이는 불가능하다. 선진국형 협력이라고 할 수 있는 성과공유제, 개방적 거래관계, 대기업의 중소기업 지분투자는 양측간 신뢰가 없다면 부작용만 낳으며 하지 않느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제 대ㆍ중소기업간 상생협력의 새로운 시대는 막이 올랐다. 아무쪼록 우리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상생협력의 새로운 시장질서 속에서 글로벌 무한경쟁의 승리자로 우뚝 서기를 바란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