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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서울 강동구 고덕동에서 5년 만에 분양하는 재건축 아파트로 주목받았던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 고덕시영을 허물고 3,658가구의 대단지로 탈바꿈하고 있지만 속사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9월 말 기준으로 일반분양 물량 1,117가구의 80%에 달하는 899가구가 미분양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위례신도시·하남미사 등에 짓는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몰려 있는 지하철 8호선 복정역 인근까지 영업맨들을 파견해 수요 몰이에 나서고 있지만 계약률을 높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강남 3구에 비해 입지가 떨어져 투자수요보다는 실수요가 우세한 곳인데도 분양가는 강남 3구를 따라가려 한 결과"라며 "인근에 위례신도시·하남미사라는 경쟁자가 생기면서 더욱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됐다"고 말했다.
17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위례신도시와 하남미사지구 사이에 위치한 고덕주공의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고덕주공1단지를 재건축해 2009년 공급된 '고덕아이파크'가 미분양 소진에 어려움을 겪은 데 이어 새로 공급된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 분양마저 난항에 빠진 모습이다. 앞으로 고덕주공 2~7단지 재건축을 통해 시장에 나올 일반분양 물량만 5,000가구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분양가 인하' 카드 없이는 미분양의 무덤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고덕주공이 부진을 면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고분양가'와 '경쟁자 등장'이 꼽힌다.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의 평균 분양가(이하 3.3㎡ 기준)는 1,950만원으로 '고덕아이파크(2,200만~2,700만원)'보다 저렴하지만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위례신도시나 하남미사에 비해서는 훨씬 높은 수준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현재까지 위례신도시에 공급된 아파트의 분양가는 1,293만~1,956만원선으로 공공분양을 제외하더라도 1,700만원 중후반대의 물량이 대부분이다. 하남미사 역시 평균 분양가가 963만~1,363만원이고 민간 아파트의 경우 1,200만~1,300만원선이 주를 이루고 있다. 위례나 하남의 경우 공공과 민간이 혼합돼 공급된 택지지구라는 점에서 전체적인 '도시의 격'이 고덕지구보다 낮을 수는 있지만 분양가면에서 차이가 너무 크다는 분석이다.
김용태 잠실동88부동산 대표는 "미사지구는 총 32개 블록 중 10개가 민간 물량이고 나머지는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진행을 하기 때문에 민간 재건축인 고덕과 단순 비교는 어렵다"면서도 "하지만 승용차로 불과 5분 거리인데 분양가는 600만원가량 차이가 나 실수요자들의 관심이 미사에 쏠리고 있다"고 전했다.
일반분양가는 조합원 부담금과 직결돼 있는 만큼 향후 고덕지구에서 분양 예정인 재건축 단지들의 분양가가 대폭 낮아지기 어렵다는 점도 고덕지구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부분이다. 내년 3월 이주가 예정된 고덕주공2단지의 경우 일반분양가가 평균 2,040만원에 책정됐으며 연말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목표로 사업을 추진 중인 고덕주공4단지도 1,900만원 안팎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공급량이 많은 것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고덕주공 2~7단지 재건축으로만 5,000가구가 넘는 일반분양 물량이 나오고 인접한 고덕강일 1~3지구에서도 민간 일반공급 3,678가구가 계획돼 있다. 인근 미사강변지구와 위례지구에서의 분양도 잇따를 예정인 만큼 준강남권 아파트를 찾는 수요자라면 특별히 서두를 필요가 없는 상황이 전개되는 셈이다.
김규정 우리투자증권 부동산팀장은 "공급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고덕에서 미분양까지 연달아 발생해 수요자들이 굳이 청약통장을 쓰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며 "단순히 강남권 재건축이라는 타이틀만으로 고분양가를 책정하면 분양에 성공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