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부실원흉' 낙인… 인사 불이익… 깊은 생채기에 씁쓸한 한숨

■ 저축은행 사태 후 금감원 인사들은… <br>김장호씨 무죄 받았지만 2년넘게 법정싸움 시달려<br>실무담당 직원들 지방 파견… 징계 사유로 승진서 누락<br>금감원선 "나몰라라" 외면… "조직 문화 무너진다" 지적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표지석에 밝은 색의'금융감독원' 글씨가 선명하다. 금감원은 2011년 삼화저축은행을 시작으로 27곳의 저축은행이 문을 닫는 과정에서 금품수수, 감독부실 등의 문제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서울경제DB

언제부터 이렇게 꼬인 것일까. 대법원에서 저축은행 비리와 관련해 최종 무죄 판결을 받은 지난 24일 김장호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집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검찰에 기소된 후 2년3개월여의 악몽 같던 시간이 생각나서였을 것이다. 금융회사를 호령하는 금감원 임원에서 자살 시도를 할 정도로 바닥까지 떨어졌던 그는 이제야 다시 세상에 나설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생채기는 너무나 깊고 크다. 금감원에서 저축은행 업무를 담당했던 이들도 같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2011년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를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27개의 저축은행이 문을 닫는 동안 전ㆍ현직 금감원 담당직원들은 '부실의 원흉'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으며 업무 2선으로, 외부로 쫓기듯 나가야만 했다.

몇몇은 김 전 부원장보처럼 무고하게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르기도 했고 일부는 승진에서 물을 먹었다. 뇌물을 받아 실형을 산 사람도 있지만 열심히 일했음에도 조직에서 뒤처진 사례가 더 많다. 저축은행 사태 이후 금감원 사람들의 인생은 이렇게 달라졌다.

실무를 담당했던 이들의 사정도 김 전 부원장보만큼 딱하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를 전후로 저축은행을 담당했던 A씨는 조직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자청해 일선에서 빠졌다. 이후 지방자치단체로 파견을 나갔다가 최근에야 금감원으로 돌아왔다.

당시 권혁세 전 금감원장은 "(조직을 위한 행동인 만큼) 신경을 써주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달라진 것은 없다.

2008년 전후로 팀장급으로 저축은행국에서 일했던 이들도 마찬가지다. 해외 파견을 나갔다가 돌아온 B씨는 보직을 받지 못했고 서민금융 전문가였던 C씨도 지방으로 내려갔다가 후선으로 빠졌다. 저축은행 문제의 책임을 묻는다는 의도였지만 내부적으로는 그동안 부실을 잡아내고 건전성 강화를 위해 한 일도 적지 않다는 말도 있다.

핵심 실무자였던 D씨도 저축은행 관련 징계로 승진에서 누락됐다.


미스터리 쇼핑 같은 여러 제도를 사전에 도입하기도 했지만 예외는 없었다. 최근에도 그랬는데 올 5월 있었던 직원 인사에서 당시 저축은행검사1국 팀장들은 한 명도 부국장이 되지 못했다. 밤을 새기는 일쑤였고 검찰 수사과정에서 검찰에 불려갔다 온 이들은 정신적인 문제까지 호소할 정도였지만 조직의 평가는 냉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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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솔로몬ㆍ미래저축은행 구조조정은 살얼음판을 걷는 과정이었다. 밀항시도로 유명해진 김찬경 전 미래저축은행 회장은 권총을 구입해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 금감원 직원 E씨 등 일부에게 보복하겠다는 내용을 흘리기도 했다.

전직 금감원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구조조정을 너무 잘했나봐. 다 처리하고 나니까 우리들은 필요가 없어진 거지."

금감원에 저축은행 트라우마가 생긴 것은 이때쯤부터다. 책임을 피하기 위해 검사를 나가면 무조건 전보다 대손충당금을 많이 쌓으라고 지시하는 이상한 관행이 생긴 것이다.

물론 일부 직원은 저축은행에서 돈을 받았고 금감원은 저축은행 부실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올해 4월에는 저축은행 대표로부터 금품을 받아 챙긴 전ㆍ현직 금감원 직원 2명이 대법원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게다가 금감원은 저축은행 자산이 급속도로 불어날 때 이를 막지 못했다. '8ㆍ8클럽' 제도도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그러나 뒤에서 묵묵히 일한 이들까지 도매급으로 취급되고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문제라는 얘기가 나온다. 금감원의 조직문화가 무너지고 있는 탓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김중회 전 금감원 부원장이 신용금고 사건으로 억울하게 검찰에 기소될 때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은 김 전 부원장에게 위로의 편지를 건네주고 검찰에 파견돼 있는 금감원 직원을 모조리 철수시켰다"며 "열심히 일한 직원들을 믿고 인정해줘야 조직이 사는데 지금의 금감원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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