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인문학으로 세상 보는 시야 넓혀요"

서울교육청·백상경제연구원 주최 인문학 강좌 '고인돌' 3회째 맞아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 대폭 늘려 '역사 속 장애인' 등 색다른 주제로

생각할 거리 던져주며 사고력 키워줘 논술·대입 자소서 작성에도 큰 도움

지난 8일 오후 서울시 교육청과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 주최하는 ''고인돌(고전 인문학이 돌아온다)'' 강좌가 열린 서울 종로구 풍문여고에서 정창권 고려대 교양교직부 교수가 조선시대의 장애인 복지제도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조선시대에 장애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지난 8일 오후6시 고전 인문학 강좌 '고인돌(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이 열린 풍문여고 1층 멀티미디어실. 강사로 나선 정병권 고려대 교양교직부 교수는 야간 자율학습을 해야 할 시간에 대신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온 1~2학년 100명에게 다소 낯선 질문을 던졌다. '장애인' '복지제도' 등 주제가 나오자 지금까지 정치 중심의 역사를 배워온 학생들은 당황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하지만 이내 조선시대의 성군으로 꼽히는 영조·정조 때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을 역임했던 채제공이 사실은 선천적인 귀머거리였다고 말하자 학생들은 놀라워하며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2013년부터 시작해 3년째를 맞은 '고인돌 강좌'는 서울시 교육청과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개최하고 KT가 후원하는 행사로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신예 인문학자를 발굴해 학생들과 소통하도록 하는 게 특징이다. 이날 '역사 속 장애인 이야기'라는 주제로 강사로 나선 정 교수는 역사 속 장애인·여성 등 소수자를 오랫동안 연구해 관련한 책만 23권을 쓸 정도로 '역사 속 소수자'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로 꼽힌다.


정 교수가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학생들과 비슷한 나이인 고등학교 때 중증장애인과 함께 시설에서 지낸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정 교수는 "사실 가장 얼굴이 밝은 사람들은 중증장애인"이라며 "사소한 도움 하나에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함을 표하는 것을 함께 생활하며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정 교수의 솔직한 말에 학생들의 마음도 열렸다. 한 학생은 '우리 누구도 장애에서 자유롭지 않다' '내가 장애인이 된다면 사회에서 가장 먼저 해줬으면 하는 게 무엇일까, 바로 나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인정 아닐까'라는 감상을 종이에 적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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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정 교수가 들려주는 조선시대 속 장애인 이야기는 '장애인은 과거에 소외된 삶을 살았다'는 상식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조선시대 때 장애인은 병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의 '독질' '폐질' '잔질' '병신'으로 불렸다. 이때까지는 질병이나 질환을 뜻하는 '질(疾)'이 쓰인 만큼 이들을 회복이 가능한 상태로 봤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를 일컫는 '불구자'로 바뀌었다. 조선시대에는 사람들이 장애에 대해 인식하는 것도 달랐고 장애인을 국가에서 책임지고 공동체에서 수용할 수 있도록 세금을 면제하고 부양자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구휼 정책을 펴기도 했다. 그 결과 조선시대에만 장애인 6명이 현재의 국무총리격인 영의정을 지내기도 했다. 정 교수는 "전통시대에서 장애인은 비교적 양지에서 떳떳한 생활을 했고 장애인이라도 학식이 뛰어나면 그에 맞는 존경과 대우를 받았다"며 "공동체 지향적인 전통시대 장애인 복지정책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싶다는 1학년 민유빈양은 "조선시대에 비해 현대사회는 겉으로는 이들을 보호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장애인들이 설 자리가 없게 하는 이중적인 정책을 펴는 것 같다"며 "역사에 대한 관심을 여성과 장애인 이슈로도 넓히고 싶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당장은 관계없어 보이는 역사 속 소수자 강의가 학생들에게 필요한 이유에 대해 "여성을 알면 인생을 두 배로 살 수 있고 장애인을 알면 인생을 세 배로 산다"며 "학생들이 공동체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없는데 다르게 생각함으로써 더 폭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학생은 강의 말미에 현재가 오히려 옛날보다 장애에 대한 편견이 큰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등 이번 강의를 통해 기존 고정관념 속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폭이 한층 넓어졌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두 시간 진행된 강의에서 학생들은 교과서나 문제집을 꺼내 보거나 하는 일 없이 정 교수의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했다. 한 교사는 "학생들이 야간 자율학습 때보다 더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2학년 김민혜양은 "책을 읽어도 내가 완전히 소화했는지 가늠할 수가 없는데 저자나 인문학 교수가 강의를 하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때 일대일로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라고 흡족해했다.

고인돌 강의는 올해 3회를 맞아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을 대폭 늘렸다. 참가학교 30개교 중에 고등학교가 23개교로 주를 이룰 정도로 학교에서 소화하지 못하는 논술·자기소개서 작성 강의 등을 인문학 강좌를 통해 보완한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인문학 강좌를 접하고 사고력을 키우면서 대학 입시를 치를 때도 자기소개서상에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과 사고력도 키우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홍성경 풍문여고 교장은 "인문학 강좌를 학교에 유치하기 위해 그동안 많은 노력을 했다"며 "학생들이 논술 외에도 세상을 살아가는 감성을 얻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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