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명품의 자격


얼마 전 시내 커피숍에 있다가 옆 테이블에 앉은 여성분들의 대화를 듣게 된 적이 있다. 그들은 해외 여행 중 '명품' 쇼핑의 필요와 가치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나라가 더 싸고 국내에만 들어오면 값이 뛰고 혹자는 너무 싹쓸이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사람에 따라 주장은 다르겠지만 옆 그들의 대화를 듣는 가운데 사람들에게 명품이 얼마나 관심 가는 존재인지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관세청의 최근 5년 수입가방 자료에 따르면 1,500만원이 넘는 초고가 가방의 수입은 7배나 증가했으며 300만원이 넘는 것은 27배에 달한다고 한다. 또 한국은 전 세계 명품 시장에서 그 규모가 8위를 차지한다고 하니 자타가 인정하는 명품 소비국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해외 수입 브랜드들이 무분별하게 '명품'으로 불리고 복제품마저 성행하는 등 폐해도 생겨나고 있다.


문득 '명품'의 의미 자체가 퇴색된 것은 아닐까 마음에 걸린다. '명품(名品)'은 '비싸다'는 의미가 아니다. '뛰어난 물건이나 작품'을 뜻한다. 이제는 사전에만 남아 있는 것일까. 명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를 더하는 대상에 줘야 할 쉽지 않은 자격이다. 장인 정신과 최고 기술이 만나 오랜 시간에 걸쳐 인정받은 명품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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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장인들의 수작업과 뛰어난 기술력, 소량 생산이라는 명품의 철학은 우리 공예와 참 많이 닮아 있다. 공예품이 탄생하는 과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예술적인 가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 이봉주 장인은 63년 동안 방짜유기의 전통을 잇고 있다. 구리와 주석을 78대 22의 비율로 합금해 만드는 방짜유기는 전통적으로 대장의 총지휘로 11명이 한 조가 돼서 손으로 두드리고 또 두드려 탄생하는데 휘거나 잘 깨지지 않고 쓸수록 윤기가 난다. 사람의 손으로 두드려 완성한 울퉁불퉁한 자국은 멋스럽기 그지없다.

작은 공방을 운영하는 한 신예 도예가도 전 과정을 수작업으로 한다. 도자기를 성형 후 일일이 사포로 스펀지로 갈아내고 닦아낸 후 유약을 바르고 재벌을 굽는다. 덕분에 미니멀한 디자인이면서도 기계적이지 않은 따뜻함을 담은 작품이 만들어진다. 작품을 보다 가볍게 만들기 위해 갈아내고 다듬는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팔을 쓰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분명한 가치가 그 안에 담겨 있다.

올해 소비 트렌드의 대표 키워드는 '가치 소비'다. 당연히 어느 것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우리의 소비와 삶의 모습은 확연히 달라진다. 필자는 사물에 담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새로운 가치를 찾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한 사람의 땀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긴 찻잔에 차를 내는 순간 내 삶이 한층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고 있다. 나의 주변을 살펴보며 내 삶이 말해주는 가치점검 시간을 가져보자. 진정한 가치를 찾는 일이 바로 삶을 한층 더 풍요롭게 하는 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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