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지원 없어 오히려 소신경영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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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철 대우정보시스템 사장이 지난해 3월 취임했을 당시 이 회사는 내우외환을 겪고 있었다.
밖으로는 전세계적으로 정보기술(IT) 시장이 침체해 있었다. Y2K, 인터넷 붐 등을 타고 일던 상승 기류가 지난 2000년 완전히 꺾이면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업들의 전산 투자가 대폭 줄었다.
안으로는 대우그룹의 해체로 큰 위기를 겪고 있었다. 그룹 차원의 투자가 없어 일감을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러다 보니 직원 월급을 올려주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이직사태가 일어났다. 남은 직원들도 열심히 일해보자는 의식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과거의 애사심이나 결속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더이상 뒤로 물러날 데가 없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직원들에게 설명했습니다. 돈을 벌자고 했고 벌면 모두 나눠가질 수 있다고 다독였습니다."
박 사장의 이 같은 독려는 다행히 제대로 먹혀들었다. 그는 대우정보시스템이라는 회사의 창립 멤버였다.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일은 거의 없었을 정도로 회사 살림살이를 도맡았으며 수많은 직원들을 자기 손으로 뽑은 사람이었다. 그는 이른바 회사의 장형이었다.
"그룹은 해체됐는데도 그룹의 문화는 여전히 남아 있었죠. 그룹이 잘 나갈 때는 좋겠지만 이제는 변해야 했어요. 예를 들어 다른 곳은 다 연봉제를 실시하는데 우리만 호봉제를 고집하고 있었습니다."
박 사장은 취임 이후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건드리며 변화를 줬다. 책임경영을 도입, 경영 전반의 권한과 책임을 아랫사람에 위임함으로써 빠른 의사결정을 유도하는 등 각종 프로세스를 개선했다.
개인의 직무성과와 능력 중심의 평가제도를 도입해 실적 위주 보상체계를 확실히 했다. 시스템통합(SI) 특성상 가장 중요한 인력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교육이수학점제ㆍ사내자격관리제 등을 채택, 직원 개개인의 전문성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지난해 매출 2,710억원, 경상이익 34억원을 올리며 재기에 성공했다. 경기 침체로 모든 SI업체들이 매출이 뚝 떨어진 상황에서 대우만 유독 6%의 매출 성장을 이룩했다.
상황이 반전하자 고질적이던 이직도 거의 없어졌다. 과거 월평균 40~50명 수준이던 이직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자연감소분 수준인 10명 안팎으로 줄었다.
올해는 매출 3,260억원, 경상이익 13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내 5대 SI업체로 안정적인 진입을 하고 오는 2005년에는 기업가치를 5조원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목표는 그룹의 지원을 별로 받지 못하는 것을 감안하면 다소 과다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박 사장은 다른 대형 SI업체와는 달리 그룹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장점이라고 반박한다.
그는 "그룹 물량을 어느 정도 받아오기는 하지만 그나마 대부분 입찰에서 경쟁을 통해 실력으로 가져온다"며 "그룹을 끼고 있는 대형 SI업체들과 비교할 때 경쟁력이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갈수록 중요해지는 최고경영자(CEO)의 역할 면에서도 과거보다 오히려 낫다는 것이 박 사장의 판단이다. 종전에는 그룹 눈치를 봐야 되고 그룹 관련 행사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가야 했지만 지금은 가욋일에 신경을 쓰지 않아 수주 한건을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15억원짜리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직접 가서 바로 네고하고 수주했죠. 종전 같으면 그 정도 규모는 신경 쓸 시간이 없었겠지만 이제는 그런 곳까지 관심을 기울일 수가 있게 된 거죠."
해외시장 진출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단발성 수주 대신 현지법인 및 거점을 활용하고 기존 대우 관계사의 네트워크를 활용, 국내에서 검증된 자체 솔루션과 서비스를 중심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대우정보시스템은 사실 업계에서 가장 먼저 해외진출을 시도했다. 이 같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단기적인 승부보다는 지속적인 관계 속에서 우수한 경험과 기술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박 사장이 올해 직원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것은 '돈맛'이다. 좀 세속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그는 올해 반드시 이 맛을 보여줄 계획이다. 그래서 본부장들과 회의할 때도 "직원들에게 돈맛을 보여줄 수 있게 당신들이 열심히 뛰시오"하면서 다그치고 있다.
"취임할 때 주주들과 약속한 게 있습니다. 돈을 벌면 모두 직원들에게 주겠다고 했더니 모두 인정을 해줬습니다. 주주들은 주식값이 오르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한기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