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아름답고 새로운 노동세계」에서 세계 노동문화의 변화를 이렇게 한마디로 정의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유럽의 노동문화가 점점 더 빨리 개발도상국의 노동문화에 동화되어가고 있다는 얘기이다.벡은 이 책에서 유럽인들은 앞으로 10년 안에 종속적으로 고용된 2명 가운데 오직 1명만이 지속성 있는 전일제 직장을 갖게 될 것이며, 나머지 반수는 브라질식으로 일하면서 불안정한 취업 조건 아래서 「노동유목민」으로 생존할 것이라는 우울한 진단을 내리고 있다.
현재 뮌헨대 사회학연구소 소장이면서 런던경제학교 교수인 울리히 벡은 그러나 이 책에서 암울한 노동의 미래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갈수록 기능이 약화되어 가고 있는 현재의 노동문화를 능동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시민노동」이라는 개념을 내세운다. 지구화시대의 탈국가적인 체제하에서 새로운 시민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벡 교수는 노동, 자유, 정치 행위의 관계를 고찰해 역사적으로 세 가지 사회 모델을 구별한다. 첫번째 모델은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이다. 당시 자유는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였다. 즉 노동을 하지 않아야 자유로왔다는 얘기이다.
두번째 모델은 제1차 현대의 노동민주주의이다. 그 기본철학은 『오직 노동하는 자만이 존재한다. 그것도 인간으로』라는 식이었다. 이런 사회에서는 생동적인 민주주의란 곧 생동적인 취업노동 참여를 전제한다. 시민이란 곧 노동시민이었던 것.
저자가 제시하는 세번째 모델은 이렇다. 제2차 현대의, 다시말해 지구화시대에는 탈국가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시민사회가 등장한다. 여기에서 국민국가의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는 국경을 넘나들며 초국가적으로 교역을 하고 정보통신의 기술발달로 인해 지리적 국경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제1차 현대에는 완전고용이 일반적이지만, 제2차 현대에서는 분산적이면서 예측이 어려운 파편화된 노동만이 존재한다. 때문에 서구사회가 브라질의 모델을 따라가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취업사회의 결별이 바로 그것이다.
벡 교수는 이런 관점에서 시민노동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한다. 불완전한 취업노동을 보완하기 위해 보편적이면서도 세계적 공동선의 이념을 옹호하는 시민노동이 필요하다는 것. 시민노동은 자신만을 위한 취업노동이 아니라 제3자를 위한 자기성찰적이고 봉사적인 노동으로 세계시민사회의 완성을 위한 중요한 도구라는 것. 시민노동이란 아주 간단하게 정의하면 휴머니즘적인 의료봉사활동과 같은 사회봉사 노동을 포괄한다.
벡 교수는 이 책에서 세계시민사회를 가능하게 만드는 아름답고 새로운 노동의 창출을 적극적으로 제안하면서 다가오는 뉴밀레니엄을 보편적인 휴머니즘의 기반 위에 올려놓자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생각의나무 펴냄. 1만5,000원.
이용웅기자YYO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