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제 확대·대학 영재프로그램 다변화등 필요<br>주입식·5지선다형 시험 창의교육 최대 걸림돌<br>논술시험·영재교육도 사교육 시장만 부풀려<br>초등~대학 전과정에 창의적 훈련과정 도입을
| 많은 전문가들은 5지선다형 문제에 의존하는 현행 대 학입시제도가 창의교육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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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육계를 중심으로 국내 창의교육이 본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가 창의교육을 명문 상급학교로의 진학을 위한 스펙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의 원인을 현행 대학입시제도에서 찾는다. 5지선다형 문제의 고득점자가 인재로 인정받아 명문대에 진학하는 한 진정한 창의교육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단시일 내에 현재의 대학입시제도를 변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교육계에서는 우리의 교육현실을 직시하고 체계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창의교육시스템과 창의리소스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21세기 창의성기반경제 시대에는 창의인재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이를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수년 전부터 창의인재육성과 발굴을 위한 다양한 제도 도입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2007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내년부터 초등학교 3·4학년과 중학교 1학년 과학 과목에 자유탐구 과정이 도입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2009 개정 교육과정, 입학사정관제, 과학중점학교, 자율형 사립고 도입도 같은 범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국가의 지속가능 한 발전을 꾀하고 선진국 도약의 기틀을 마련 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바람직한 변화다. 하지만 교육계와 창의교육 전문가들은 이 같은 노력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이번 기회에 국내 교육체계에 대한 진지하고 냉철한 통찰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육은 교사와 학생·학교·학부모·기업·사회 등의 요인들이 신경망처럼 복잡하게 얽힌 분야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주입식 교육의 뿌리 가 너무 깊어 단순히 선진국형 창의교육시스 템의 도입을 밀어붙이는 것으로는 진정한 창의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
우리 스스로 주입식 교육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동안 이의 타파를 위해 다양 한 교육개혁을 시도했지만 지금껏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와 관련, 모든 교육계 인사들이 창의교육과 창의인재 육성의 최대 장벽으로 꼽는 게 하나 있다. 바로 5지선다형 문제 중심의 대학수학 능력시험이다.
◇대입제도가 창의교육의 최대 장벽=5개 가운데 1개의 정답을 찾아야 하는 수능의 객관 식 문항은 지식의 양과 암기력의 측정에 최적화 된 평가방법이다. 반대로 이해력·사고력·독 창성 등 창의력의 판별에는 큰 한계가 있다.
정답을 특정하지 않는 것이 창의성의 출발점 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중·고교 교육의 기본적 지향점 이 좋은 대학으로의 진학이라는 점을 부정하기 어려운 국내 환경에서는 창의교육보다 주입식 교육이 오히려 목표달성에 훨씬 효과적인 것 또한 사실이다.
일선 교사들을 대상으로 창의교육의 중요성 전파에 앞장서고 있는 이원춘 (경기 화광중 물리교사) 전국수석교사연합회 회장도 이에 따른 어려움을 토로한다. 이 회장은 "아직도 우리는 학력을 사회적 성공의 보증수표로 인식 한다"며 "대입제도의 수술 없이 교사들에게 창의교육을 하라는 것은 일정부분 어불성설에 가깝다"고 말했다.
최근 '창의적 인재육성의 근본적 한계와 당면과제’라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한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의 김왕동 박사도 같은 생각 이다. 특히 김 박사는 5지선다형 대학입시와 맞물려 현행 학교 및 교사의 평가기준도 창의 교육 실현의 핵심 저해요인으로 지목한다.
고등학교는 물론 초·중등학교 또한 명문대 진학의 엘리트코스로 불리는 특성화 중학교와 특수목적 고등학교의 진학률을 가지고 학교와 교사의 우수성을 평가하는 상황에서 창의리소스 개발이나 창의교육은 뒷전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 김 박사는 "초·중·고교를 막론하고 명문 상급학교로의 진학률로 줄 세우기를 당하는 게 교육계 현실"이라며 "이에 따라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 당국과 교사 모두 문제풀이를 통한 정답 찾기 실력 향상에 주력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대학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강의의 질과 교육능력이 아닌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급 학술지에 대한 논문 발표 숫자 등으로 순위가 매겨지기 일쑤다.
김 박사는 "대학교수 역시 현실적으로 창의교육을 위한 강의준비 보다 논문 집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 하도록 압박을 받고 있는 셈"이라며 "창의인재 육성은 대입제도와 함께 교원과 학교의 사회적 평가 기준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만 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제 역할하지 못하는 영재교육=이 같은 조건이 뒷받침되지 않는 교육개혁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대학입시에서의 내신 성적 비중 강화다.
당초 이 정책은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됐지만 결과는 정 반대였다. 평상시 학교 성적이 중요해지면서 전 과목에서 사교육 바람이 거세게 몰아친 것.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사교육시장규모는 무려 20조9,000 억 원으로 2003년의 13조원에 비해 약 8조원이나 늘었다.
논술시험도 마찬가지다. 대학의 인재 변별력을 높인다는 도입 취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연간 1조원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사교육 시장이 창출되며 또 다른 주입식 교육의 대상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렇다면 창의교육도 이들과 유사한 전철을 밟게 될까.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럴 개연성이 다분해 보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내 창의교육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영재교육만 봐도 그렇다. 기존 입시제도의 굴레를 탈피하지 못하면서 창의인재 육성에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일선 교사 등 교육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영재교육이 명문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선행학습에 불과하며 창의성 배양 효과가 미미 하다는 목소리가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다. 여기에 학생과 학부모마저 영재교육을 선행학습과 진학의 도구로 여기고 있다.
지난해 국제과학올림피아드 수상자의 50%가 이공계가 아닌 의대에 진학했다는 사실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각종 경시대회 수상 실적이 영재교육원과 과학(영재)고 입시에서 창의성 평가 자료로 인정받으면서 학생들의 대회 출전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 또한 명문대 학으로의 진학을 위한 도구일 뿐임이 확인된 것이다.
지난달 서울과학고등학교 영재교육원을 수료한 서울 장평중학교의 한 학생도 "학교 교육과 별도로 영재교육원의 교과 과정을 이수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지만 선행학습 차원에서 특목고 진학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믿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수료의 변을 밝혔다.
지난 2년간 중학생 자녀를 영재교육원에 보냈다는 한 학부모 또한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다수 학생과 학부모는 영재고·과 학고 진학에 도움을 받기 위해 영재교육원 을 선택하는 것으로 안다"며 "창의교육은 하나의 옵션일 뿐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를 보면 '아인슈타인이 한국인으로 태어났다면 수학과 물리학 외에는 두각을 나타내 지 못해 대학 진학에 실패하면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문용린 서울대 교수의 비유가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현실과 이상의 접점 찾아야=이처럼 명확한 문제 인식과는 달리 해결책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대학입시 제도를 바꾼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은 탓이다.
이 때문에 창의교육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 실을 인정하고 우리 교육환경에 맞춤화된 창의교육시스템과 창의리소스를 개발, 점진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리고 주입식 교육과 창의교육, 즉 현실과 이상의 접점을 찾는 해법으로 입학사정관제를 꼽는다.
입학사정관제는 성적 위주의 선발 방식을 벗어나 별도의 입학사정관이 구술면접 등을 통해 학생의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을 파악해 선발하는 제도다. 지난해 16개 대학에서 시범 도입된 뒤 이번 2010학년도 전형에서는 47 개 대학에서 360명의 입학사정관이 총 2만 695명의 학생을 선발할 계획이다.
특히 내년부터는 과학고에도 영재교육원 수료자 및 올림피아드 수상자 전형, 영재교육원 수료자 가 산점이 사라지고 입학사정관 전형이 도입될 예정이다. 이 회장은 "입학사정관제를 잘 활용하면 진정한 창의인재들이 우수 상급학교로 진학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며 "이렇게 되면 초·중· 고교에서도 획일적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교육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예상 했다.
물론 높은 기대에 반해 아직은 우려의 시각도 큰 편이다. 창의성 자체가 계량화되기 힘든 가치여서 객관적 평가기준 마련이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 교육과학기술부 국정감사에서 지적됐듯 자칫 제2의 성적 우수자 선발 경쟁으로 치닫거나 새로운 사교육시장이 창출될 개연성도 배재할 수 없다.
김 박사는 "창의인재 선별과 초·중·고에서 의 창의교육 촉진은 입학사정관제의 실효성 제고가 관건" 이라며 "이에 더해 초·중등학교와 교대·사범대에 대한 창의적 사고기법 훈련 과정 신설, 대학내영재교육 프로그램 다변화 등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