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릭스(BRICs)로 대표되는 신흥국 주도 아래 고속성장을 누려온 글로벌 경제가 본격적인 '대감속 시대(Age of Great Deceleration)'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27일자 최신호에서 최근 가시화하고 있는 신흥시장 둔화는 일시적인 부진이 아니라 큰 흐름의 변화를 나타내는 '터닝포인트'라며 향후 10년 이상 신흥국 경제의 감속이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중국ㆍ인도ㆍ브라질ㆍ러시아 등 브릭스 4개국을 비롯한 신흥국 경제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구매력 기준)은 10년 전 38%에서 올해 최초로 50%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선진국 경제의 성장속도가 상대적으로 둔화한 탓이기도 하지만 신흥국들이 두자릿수의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1990년대 후반 이후 개발도상국 가운데 73%가 미국의 성장속도를 앞질러왔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지속되던 신흥국 경제의 고공행진은 현재 거의 반 토막이 난 상황이다. 중국은 올해 정부 목표치인 7.5% 성장이 위태로운 상황이며 인도는 5% 안팎, 브라질과 러시아는 각각 2.5% 수준의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2007년 당시 중국과 인도가 각각 14.2%와 10.1%의 두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고 브라질ㆍ러시아의 GDP 성장률도 6.1%와 8.5%를 기록했던 것을 감안하면 형편없이 낮은 수준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동안 글로벌 경제성장을 견인해오던 신흥국의 엔진이 식어감에 따라 전세계가 '대감속'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당시에는 선진국이 줄줄이 침체에 빠졌어도 중국 등 신흥국들이 세계경제를 떠받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지만 이제는 신흥국에 그런 견인차 역할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가령 브릭스 4개국의 세계 경제 성장률 기여도는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 당시 3분의2에서 2011년에는 절반으로, 2012년에는 절반 미만으로 떨어졌다. IMF는 적어도 앞으로 5년간은 이들 4개국이 세계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지 못하는 수준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제는 신흥국 경제가 선진국의 약점을 보완할 수 없게 됐다"며 "미국과 일본 경제가 강력하게 반등하거나 유럽이 살아나기 전에는 세계 경제가 3% 이상 성장하기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IMF는 최근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3%에서 3.1%로 하향 조정했고 이에 앞서 세계은행도 올해 성장률을 2.4%에서 2.2%로 낮춰 잡았다. 여기에는 신흥국의 경기 둔화가 큰 작용을 했다.
일각에서는 급속도로 둔화하는 브릭스 경제의 뒤를 이어 신흥 개도국들이 고성장을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경제 규모가 작은 이들에게 과거 브릭스와 같은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1990년대에 '브릭(BRIC)'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골드만삭스는 그 뒤를 이을 차세대 신흥국으로 인도네시아ㆍ멕시코ㆍ터키ㆍ방글라데시 등 11개국으로 구성된 '뉴 11'을 거론하기도 하지만 총 인구가 13억명에 그치는 이들 11개국이 브릭스를 대체할 성장동력 역할을 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 10년도 신흥국 경제는 성장을 하겠지만 그 속도는 완만해질 것"이라며 "이러한 감속이 가져 올 즉각적인 영향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세계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