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평생직장과 평생직업/곽수일 서울대 경영대학장(송현칼럼)

요사이 우리 경제에 드리운 먹구름중 하나가 전반적인 실업난이다. 대학졸업생들의 취업률이 50%도 채 안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을 뿐 아니라, 각 기업들이 구조조정 차원에서 많은 기존 인력들을 명예퇴직 형태로 내몰고 있다. 이와같이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난은 미처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이들을 실업자로 만드는데다, 명예퇴직은 이제까지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 규범으로 받아들여졌던 평생직장의 개념을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또 생산현장에서 외국인 불법취업자 수가 매년 증가하여 현재 13만명을 넘고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생산현장의 실업난 역시 해를 거듭할수록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보다 심각한 것은 고급인력, 경력인력을 중심으로 한 실업난이다.일단 기업에서 명예퇴직을 하게 되면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란 막 대학을 졸업한 사람보다 훨씬 어렵다. 이는 우리의 노동시장에서 직업이동이 관례화되어 있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다시 직업을 구하는 경우엔 과거직장보다도 훨씬 낮은 월급을 감수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명예퇴직한 사람이 과거 직장보다 낮은 월급을 받게 된다는 것은 대체로 노동시장에서 이 사람의 능력이나 가치에 대한 평가가 그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전직장에서 높은 월급을 받았던 것은 이 사람의 가치가 이에 상응하는 월급에 미치지 못했더라도 기업이 새로 사람을 쓸 경우에 드는 추가적인 고용비용, 훈련비용 등의 비용부담보다는 이 사람을 그냥 고용하는 것이 비용면에서 유리했기 때문일 뿐이다. 따라서 고용을 줄여야 하는 시점이 오게 되면 이런 사람들은 우선적인 퇴직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즘처럼 명예퇴직제도가 실시되고 앞으로 정리해고제가 도입되면, 취업난의 문제는 개개인의 경력이나 능력수준과 기업이 지불하려는 월급수준이 제대로 된 관계에서 분석되고 그 해법이 찾아져야 할 것이다. 즉 치열한 경쟁의 전쟁에서 살아남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각 기업이 더 이상은 안이하게 그 가치에 걸맞지 않는 보수를 제공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 경제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제고되고 정리해고제가 실시되면 평생직장의 개념은 자연히 쇠퇴할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대비하기 위해 이제 각 개인들에게 평생직업의 개념이 필요하게 된다. 이때 평생직업이란 본인이 원하는 기간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을 자신이 개발하여 자신의 월급수준에 걸맞는 가치를 지니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노동계약의 개념이 평생직장에서 평생직업의 개념으로 전환되는 경우 기업과 종업원의 입장 모두에서 여러 가지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첫째는 기업의 인사관리가 과거와 같이 사원들의 일방적 충성심이나 희생에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사원들에게 자기개발의 기회를 주기 위한 도전적이고 흥미있는 직무설계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이미 우리의 젊은이들간에 안정된 직장보다는 자기개발의 기회가 주어지는 직업을 선호하고, 이를 찾아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과거와는 달리 월급의 많고 적음보다는 새롭고 발전전망이 있는 직업으로 과감히 옮기는 젊은이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들의 목표는 결국 묵시적으로 평생직장보다는 평생직업의 개념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기업에서 사원들의 건강증진을 위하여 헬스센터를 두고 종업원들의 건강을 점검하고 단련시키는 것처럼, 경력진단 및 개발센터를 두어 각 사원들의 경력개발을 계획, 수립, 실행, 평가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직업능력을 고양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할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경력평가나 경력진단 및 개발센터는 좋은 직장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 될 것이다. 둘째로 각 사원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능력과 월급수준을 스스로 평가하여 변화하는 상황에 대비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기업이 원하는 만큼의 능력과 가치를 적절하게 지니고 있지 못하다가 갑작스런 명예퇴직선고에 당황하게 되고, 상당기간 예기치 못했던 실업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평생직업을 갖기 위하여 자신의 능력과 경력을 계속적으로 개발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우리 경제에서 현재의 기업내·외적인 환경의 변화가 이처럼 계속되면 평생직장의 개념은 빠른 속도로 쇠퇴할 것이며, 취업난이나 실업의 문제도 갈수록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직업의 개념은 자연히 평생직장보다는 평생동안 직업을 갖겠다는 평생직업의 개념으로 전환되어야 하겠다. 이런 전환은 경제활동전반에서 기업이나 개인 모두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이에 시기적절히 적응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다하는 것만이 경쟁에서 살아남고 더 나아가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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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수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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