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발표된 국책은행 역할 재정립 방안에서 가장 관심을 끈 산업은행의 경우 수술보다 선도적 투자은행으로의 육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감사원은 대우증권을 비롯해 산은의 5개 자회사 모두의 매각을 권고했지만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계기로 세계금융이 투자은행(IB)을 중심으로 주도되는 상황에서 국내에 선도적 IB를 육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판단한 게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또 이번 개편을 통해 산업은행과 민간금융사간 중복 업무의 정리는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산은과 수은간 업무조정, 국책은행 내부의 구조조정 등은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IB 육성이 급선무다” =산업은행ㆍ기업은행ㆍ수출입은행 등 3개 국책은행 중에서도 개편 방향에 관심이 집중된 것은 단연 산업은행. 이번 국책은행 역할 재정립 방안의 핵심은 산은 자회사인 대우증권을 매각하지 않고 대신 산은의 IB파트 역량을 키워 대우증권과 합친 뒤 산은 내에 선도적 IB 자회사를 육성한다는 것이다. IB 노하우가 척박한 국내 금융계에서 그나마 산은은 나름의 국제적 네트워크와 노하우로 IB 부문을 주도하고 있다. 산은은 IB 분야로 분류되는 국내 파생상품거래와 인수합병(M&A) 자문에서 1위를 달리고 있으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주선에선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체에서 4위에 올라 있다. 자산 9조원으로 국내 증권업계 수위를 지키고 있는 대우증권이 자본시장통합법이 본격 시행되는 때에 맞춰 산은의 IB파트를 인수하고 산은자산운용과 합병할 경우 정부는 대우증권이 국내 금융시장을 선도하는 IB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 산은의 IB파트를 대우증권이 넘겨 받으면 IB업무 비중이 현재의 9%에서 40% 수준으로 확대되고 몸집을 키우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대우증권은 전망했다. ◇민간과의 영역다툼 부분 정리=국책은행은 설비투자(산은)와 중소기업(기은), 선박ㆍ금융 등 중장기 수출입금융(수은) 등 민간영역에서 다루기 어려운 정책금융 업무를 위해 설립됐지만 최근 정책금융 수요가 줄자 상업은행 영역으로 업무를 확대해 민간금융사의 반발을 불러왔다. 특히 산은이 프라이빗뱅킹(PB)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량기업 회사채 인수 및 주선, 부동산 담보 대출 등에 참여해 민간 은행의 원성을 샀다. 정부는 이에 따라 정책금융심의회를 두고 산은의 업무 중 민간금융사와 마찰을 빚는 부분은 정리하기로 해 정책금융에 산은이 집중하게 됐다. 또 인프라펀드를 운용하는 산은 자회사인 한국인프라자산운용도 민간금융사의 진출이 늘어나고 있어 조기 매각하기로 했다. 산은의 5개 자회사 중 하나인 KDB파트너스는 지난 3월 말 공동투자가인 필맥스에 지분 50%를 매각했다. 상업적 측면이 강한 IB업무를 산은이 대우증권으로 넘김에 따라 민간 금융사와의 마찰도 줄일 수 있다. 기업은행도 민영화 방침을 재확인하고 중소기업 전문금융회사로 방향을 확정했고 수은 역시 정책금융강화에 무게중심을 둬 장기발전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하지만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산은과 수은의 업무중복 조정은 양 기관간 고위급 정기 간담회와 정책금융심의회에서 조정하는 미봉책으로 마무리됐다. 아울러 국책은행간 본격적인 구조조정 및 군살 줄이기 방안은 빠져 국책은행 수술에 한계를 나타냈다. 조원동 재정경제부 차관보도 “현 단계에서 한번에 결정 못하느냐는 지적을 겸허히 수용한다”면서도 “지금 당장 예측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