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7월23일] 율리시스 그랜트


최고의 장군이지만 최악의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S Grant)에 대한 평가다. 남북전쟁 승리를 바탕으로 미국 18대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왜 무능한 정치인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을까. 정실인사와 돈 때문이다. 1822년 태어난 그는 17세에 웨스트포인트에 들어가 임관 후 멕시코전쟁에 참전, 실전경험을 쌓았다. 생활고 탓에 군복을 벗고 농사와 벤처사업에 투자했으나 줄줄이 실패, 술어 젖어 살던 그를 구한 것은 남북전쟁. 2선급 부대인 지원병 연대장으로 복귀한 뒤 승승장구해 최고사령관에 올랐다. 1868년 대통령에 당선된 후 3선을 노리다 퇴임할 때까지 그의 치세는 한마디로 혼란. 금투기사건에서 1873년 공황, 위스키 링 스캔들(1875년)까지 부정부패와 독직(瀆職)사건이 꼬리를 물었다. 귀가 얇아 지인을 마구잡이로 등용하고 투기자본의 횡포를 수수방관,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퇴임 후에는 피라미드식 주식판매로 고율배당을 내세우는 투기꾼의 꾐에 넘어가 그랜트 워드 증권사를 설립, 한때 평가익 200만달러를 거두기도 했지만 1884년 수많은 투자자를 울린 사기행각이 드러나 전재산을 날렸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로 감옥행을 모면한 뒤의 선택은 출판. 판매대금의 75%를 받는다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출판계약을 맺은 직후 후두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랜트는 집필에 온 힘을 쏟았다. 탈고 3일 뒤인 1885년 7월23일 숨을 거둔 그랜트의 회고록은 30만부가 넘게 팔리며 유족들을 빚에서 구해냈다. 정치인으로는 실패했지만 출판으로 최후의 명예를 지킨 셈이다. 부정한 돈으로 떵떵거리는 전직 대통령들과 돈도 명예도 다 갖겠다는 이 땅의 정치인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랜트와 정치, 돈을 생각해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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