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으로부터 '불법 파견'이라는 확정판결을 받은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 사건은 오늘날의 노동 현실을 보여주는 압축파일 같다. 압축파일을 풀기 위해 사건의 전개를 따라가 보자. 노동부는 지난 2004년 현대의 사내하청을 불법 파견(파견대상이 아닌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에 파견근로자를 사용)으로 판정, 시정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논란이 잠잠해지기만 기다렸다. 정규직 노조도 협조적이지 않았다. 이는 다른 회사들이 서둘러 작업라인과 지휘체계를 바꿨던 것과 대비된다.
법ㆍ제도ㆍ정규직 노조도 약자 외면
노동부는 불법 파견으로 현대를 고발했고 검찰은 2년 가까이 시간을 끌다 불기소 처분했다. 그러자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우리들의 고용 지위가 파견이라면 2년 넘게 일했으니 정규직으로 전환해달라"고 요구했고 말이 안 통하자 노조를 만들어 단체행동에 나섰다. 결과는 해고였다. 해고된 최병승씨는 2005년 '부당 해고'라며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지만 졌다. 행정법원, 고등법원에 이르기까지 판결은 한결 같았다. 도급이지 불법 파견이 아니므로 정규직 전환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0년 7월 법리 해석을 잘못했다며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다시 넘겼고, 회사는 고법의 재심과 대법원의 확정판결까지 버텼다. 그 해 11월 사내하청 노동자 500여명은 다시 점거농성을 벌였고 회사는 대량해고와 손해배상청구로 맞받았다. 대법원이 지난 23일 최씨 손을 들어주면서 7년 가까운 싸움은 끝이 났다.
이 사건을 보면 누구든 '지금의 법과 제도가 노동시장의 약자들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가. 존중되고 잘 활용되고 있는가.'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재벌 대기업이 문제를 순리로 풀지 않고 최고의 로펌을 동원해 비틀려고 할 때 노동관련 법과 제도는 무력해졌고 소모적인 분쟁과 비용이 발생했다. 노동위원회도 별 도움이 안 됐다. 이 사건의 피고이기도 했던 중앙노동위원회는 사내하청 남용 관행을 공정한 판정을 통해 시정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행정법원과 고등법원도 '설사 파견이라 하더라도 불법 파견이므로 파견근로자등보호법의 보호(2년 넘게 계속 파견근로시 직접 고용, 즉 정규직 전환)를 받지 못한다'는 희한한 논리까지 동원했다.
노사관계 시스템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과 교섭 요구는 쉽게 무시됐다. 한국 최강의 교섭력을 자랑하는 현대차 정규직 노조도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고 때로는 문제 해결의 걸림돌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1987년 이후 20년 넘게 발전시켜왔다는 노사관계 제도가 기능 마비에 빠지고 갈등 해결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규범 만들고 원청업체 책임 강화를
하청 노동자들의 요구는 1987년 이전과 같이 원시적인 불법 점거농성을 통해서만 여론화될 수 있었다. 민주노총이나 금속산업별노동조합(금속산별노조)도 아무런 조정능력이 없었다. 노동행정은 이들의 요구가 대화로 해결되도록 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부당노동행위 여부를 엄정하게 추궁하지도 않았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사내하청이 남용되는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 최근에는 병원, 호텔에서 공기업에 이르기까지 사내하청이 날로 확산돼 이로 인한 노사분쟁이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따라서 '비정규직 보호기준'을 마련했듯이 사내하청의 고용을 안정시키기 위한 사회적 규범도 마련해야 한다. 도급계약이 바뀌더라도 고용승계가 이뤄지는 관행이라든가 원청(原請)사용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법을 만들기보다 기존의 법과 제도를 충실히 활용하면서 노사 스스로 노사관계 시스템 속에서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