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험산업은 규모로 보면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 그런데 보험상품은 은행이나 증권회사에서 파는 금융상품과 다를 바 없고 보험기관은 또 다른 금융기관으로 치부되고 있다. 그 결과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평생을 의탁해 안정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는 보험의 특성을 명확히 각인시킬 수 있는 색깔을 가지지 못했다.
법적 근거 없고 보험경영 타격 우려
역사적으로 보험권 내에서는 평준보험료 제도와 같은 보험경영상의 많은 제도와 원리를 만들어 발전시키고 정책적으로는 다른 금융상품들과 차별화된 세제혜택이나 채권에 대한 면책권을 부여해 보험만의 색깔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보험권이 본연의 색깔을 스스로 포기했거나 고유한 색깔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소홀히 했을 수 있고 당국은 보험기관을 다른 금융기관과 대동소이하게 취급해 거의 비슷한 색깔을 입혀버렸다.
보험은 최고의 신의성실을 바탕으로 한 상품이기 때문에 당국의 철저한 규제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규제는 보험이 보험답게 제 색깔을 내며 운영될 수 있는 경영 자율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전제하에 시행돼야 한다. 간혹 당국은 보험의 특성을 고려한 정책이나 감독을 시행하기보다 다른 금융기관과 같은 기준ㆍ논리를 적용해 나무만 보고 보험이라는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현상은 대선을 두 달 정도 남겨두고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가 시대적 사명인 것처럼 너나 할 것 없이 포퓰리즘 공약을 쏟아내는 최근의 정치상황과 맞물려 보다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기에 우려된다.
더구나 금융당국도 서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단세포적인 규제를 발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보험연구원 용역 결과를 근거로 한 금감원의 ‘보험계약대출 가산금리 모범규준’ 제정 시도도 그 중 하나다. 소비자의 금리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대출금리 상한선을 정하려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런 문제는 약관대출에서 가산금리를 정하는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보험경영의 많은 부분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당장 보험회사 수지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보험소비자 모두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보험사들이 가산금리를 부당하게 높게 산정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면 이를 제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금감원이 모범규준에서 제시한 가산금리 산출기준이 합리적인지, 보험경영의 전반적 측면을 검토했는지는 의문이다. 또 대출금리 상한선을 정한다고 고금리 경쟁과 고액 배당이 통제될 수 있겠는가.
보험계약 대출금리 제한은 다양한 법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첫째, 이번 모범규준의 가산금리 상한선 규제는 법적 근거가 없고 보험경영적 측면에서 타당하지 않으며, 보험계약대출을 시행하는 해외 선진국에서도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
담합으로 처벌받을 개연성도 높아
둘째, 일률적인 가산금리 적용시 공정거래법상 담합 이슈가 발생할 수 있다. 모범규준은 보험계약대출 관련 금리의 구체적인 한도를 설정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최근 저금리 상황에서 모든 보험사들이 가산금리를 최고 상한선으로 책정할 것이다. 이 경우 금감원의 행정지도를 준수했음에도 담합으로 인정될 개연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차제에 보험의 빛깔을 퇴색시킬 수 있는 모범규준을 강행하기보다 보험경영의 특수성ㆍ자율성이 확보될 수 있는 합리적 금리기준을 산정해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현재와 같은 저금리 기조에서는 인위적인 금리조정보다 자율을 통한 경쟁력 강화가 시급한 대처방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