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느려도 제대로… 정지선의 뚝심 행보

'PC오프'로 야근 없애는 등 조직문화 개선이어

"실패에 문책보단 격려" 일하는 방식 변화 주문

홈쇼핑 해외진출·프리미엄 아웃렛 출점 등

출발 늦었지만 기초 탄탄히 다진 후 착수


문성진 현대백화점 영업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 대리는 오는 20일 동료 직원 2명과 함께 브라질로 휴가를 떠난다. 문 대리는 우리나라 월드컵 대표팀의 경기를 관전하고 현지 맛집과 관광지도 둘러볼 계획이다. 휴가 기간은 총 11일. 일반 기업의 대리급 사원이 이처럼 긴 휴가를 사용하는 게 쉽지 않지만 문 대리는 오히려 회사로부터 휴가 승인은 물론 현지 체류 비용까지 일부 지원받았다. 그는 "담당 업무 중 하나가 회사 SNS 관리"라며 "브라질 체류 기간 동안 SNS에 다양한 볼거리와 현지 분위기를 게시글과 사진으로 올려 고객에게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회사 측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해줬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이 달라지고 있다. 군대처럼 보수적이고 정체된 느낌이 강했던 직장 문화가 젊고 활기찬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오후 6시 반이면 사무실 PC가 자동으로 꺼지면서 계열사마다 야근족이 사라진 대신 댄스 동아리, 합창 동아리, 스포츠 동아리를 찾는 직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 사내 아이디어 공모 소식에 서로 나서 프리젠테이션 경쟁을 벌이고, 회사는 포상으로 답한다. 그룹 관계자는 "직원들이 많이 달라졌다"며 "2003년 정지선 회장이 취임하면서 비전 달성의 첫 과제로 강조했던 조직문화 개선이 가시적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회장이 그룹을 이끌기 시작한 지 12년. 경쟁사인 롯데, 신세계 등이 국내외 확장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는 동안 현대백화점은 눈에 띄는 신규 점포 출점이나 굵직한 사업을 추진하지 않았다. 정 회장이 변화에 둔감한 게 아니냐는 외부 지적이 빈번했다. 이에대해 "지난 10여년은 '2020 비전' 달성을 위한 탄탄한 밑바닥 다지기 시간이었다"는 게 그룹 측 설명이다.

정 회장이 내세운 2020 비전의 핵심은 '2020년 매출 20조원, 경상이익 2조 달성'이다. 그룹 관계자는 "정 회장은 비전 달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무거운 기업 분위기에 활기를 불어넣는 게 최우선이라고 판단했고 '즐거운 일터' 조성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고 강조했다.


군대식 기업 문화가 강했던 현대백화점에 정 회장은 배우자 출산 30일 유급휴가, 해외 휴양소 운영, 안식월 및 안식주 운영, PC오프제를 통한 정시 퇴근, 여직원 안심귀가서비스, 직원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 등을 잇따라 도입했다. 제대로 쉰 직원이 일을 더 잘한다는 판단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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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공채 3년차 직원인 현대홈쇼핑의 윤두석 주임은 "최근 캠퍼스 취업 설명회에 다녀왔는데 가족 중심 복리후생제도와 정시 퇴근, 사내 동아리 등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대단했다"며 "요즘 취업준비생들의 '좋은 직장'기준은 과거 선배 세대들과는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최근 들어서는 '일터 분위기 변화'에 이어 '일하는 방식의 변화'도 주문했다. 상명하달식 답답한 업무 현장에서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 "당장 결과가 나오기 어렵지만 현장에서 권한 위임을 적극적으로 해야 미래에 대비할 수 있다"는 게 정 회장의 주문이라는 게 그룹 측 전언이다.

이와 함께 정 회장은 하위 직원이 과감하게 도전했다가 실패하더라도 문책보다는 격려를 지시했다. 올들어 그룹 내에 '퍼스트 펭귄상'이 생긴 것도 이 때문이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도 먹이를 찾아 가장 먼저 물 속으로 뛰어드는 '퍼스트 펭귄'과 같은 직원에게는 도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해 상을 준다.

그룹 관계자는 "정 회장 취임후 그룹 매출은 5조5,000억원에서 12조원으로 2배 이상 늘었고 1조원 넘는 순현금을 보유하는 재무적 성과도 거뒀다"며 "부채비율도 36% 수준으로 낮은 편이어서 신사업을 위한 재원이 충분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대백화점그룹은 올해부터 전략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달 첫 도심형 아웃렛인 가산 하이힐을 위탁경영 형태로 운영하기 시작했고, 이달 들어서는 베트남 홈쇼핑 시장에도 진출했다. 특히 아시아권에서 성장성이 높은 베트남에서 홈쇼핑을 통해 한섬과 리바트도 현지인들에게 선보이겠다는 계획이다. 더불어 올 연말에는 현대의 첫 프리미엄아웃렛인 김포점을 열고 내년에는 야심작인 판교복합몰과 송도 프리미엄아웃렛도 오픈한다. 그룹 관계자는 "무조건 성장 우선이 아니라 느리게 가더라도 제대로 간다는 전략"이라며 "체질 개선을 통한 질적 향상을 바탕으로 미래 성장을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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