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발언대/9월 30일] 잘난 조상이 되는 법

한국영상자료원을 흔히 아카이브(archive) 기관이라 부른다. 아카이브란 기록을 보관하는 곳을 말한다. 영상자료원은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영화 필름과 온라인 영상물을 포함한 각종 동영상ㆍ시나리오ㆍ포스터 등 영상기록물을 보존하는 곳이다. 자료원에는 지난 1900년께 구한말 서울을 담은 기록 영화가 있다. 한국을 찍은 가장 오래된 동영상일 텐데 서구 여행가의 카메라에 찍힌 꼬맹이들을 보면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들은 과연 자신이 백년이 훌쩍 넘은 후에 후손들의 눈에 이렇게 재현될 줄 꿈에라도 생각할 수 있었을까. 또 생각한다. 지금 내가 보는 영화들이 백년, 혹은 천년 뒤에 어떤 가치를 갖게 될까. 아카이브에서 일한다는 것은 항상 까마득한 과거와 미래를 생각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고고한 이상에 비해 현실은 만만찮다. 우리 영화는 일제강점기에만도 200편이 넘게 만들어졌지만 보존되고 있는 영화는 8편에 불과하다. 그것도 2004년 이후 세계 각국의 영상자료원들을 뒤져 찾아낸 결과다. 한국영화의 황금기라는 1960년대 영화들조차도 보존율이 10%대에 그치는 실정이다. 문제는 지금도 그런 인식이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여전히 많은 영화감독이나 제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영화가 제대로 보존되고 있는지에 관심이 없다. 그러다 보니 의무적으로 자료원에 납본한 복사본 필름 외에 훨씬 가치가 높은 원본 필름은 관리 소홀로 멸실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하나,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는 법이라고 자료보존에 대한 인식 부족이 가장 잘 나타나는 사례가 예산 배정 부분이다. 급하고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나는 정책 사업이 우선순위이다 보니 급하지도, 티 나지도 않는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예산은 뒷전이다. 우리는 역사와 전통,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유럽을 보며 '조상 잘 만난' 그들을 부러워하곤 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백년 뒤 잘난 조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직은 잘난 조상이 되기보다는 우리 대가 '먹고 살기에 급급한' 시기를 살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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