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SectionName(); "천황제는 日 근현대 사회 모순의 뿌리" ■ 패배를 껴안고(존 다우어 지음, 민음사 펴냄)천황제 코드(조용래 지음, 논형 펴냄)패전후 민주주의 걸림돌로 작용역사왜곡·야스쿠니 신사 참배등도군비증강 위한 보수세력의 잔재 장선화 기자 india@sed.co.kr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ImageView('','GisaImgNum_2','default','260'); “전쟁은 일본에 유리하게 전개되지 않았으며, 세계의 대세 또한 우리에게 불리하다. 견디기 힘듦을 견디고 참을 수 없음을 참아라.” 1945년 8월 15일 정오 일본 히로히토 천황의 애매모호한 그러나 굴욕적인 패전 선언이 라디오를 통해 일본 전역에 퍼져나갔다. 천황의 명을 받들어 중국, 연합국 등과 치른 일본인들의 ‘성전(聖戰)’은 이렇게 끝났다. 이후 일본은 사실상 주권을 상실한 채 미국의 그늘 아래에서 극적인 현대사를 만들어 나간다. 광복절에 맞춰 일본 근대사를 조명한 책이 잇달아 출간됐다. 존 다우어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역사학과 교수가 전후(戰後) 일본의 사회ㆍ문화적 변화를 재해석해 낸 ‘패배를 껴안고’와 한국 경제학자가 천황제를 중심으로 일본 사회를 풀이한 ‘천황제 코드’ 등이다. 두 책 모두 맥아더 장군이 이끌던 연합군 총사령부(GHQ)와 일본 천황과의 역학관계를 조명하면서 ‘천황제’를 일본의 전후사와 현대 일본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로 보고 있다. 다우어 교수는 같은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가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더글러스 맥아더가 이끄는 미군은 ‘군국주의 일소(一消)와 민주화’를 목표로 내 걸었으나, 맥아더는 일본의 민주주의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증거를 점령군이 가장 비민주적인 기구인 천황제를 그대로 살려뒀고, 여기에 점령군이라는 관료주의 조직이 더해졌다는 것을 제시한다. 맥아더 장군은 히로히토 천황에게 전쟁의 책임을 묻는 대신 그를 정중히 모시면서 천황과 더불어 ‘양두(兩頭)정치의 두 군주’처럼 군림해 ‘벽안(碧眼)의 쇼군’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른바 ‘일본과 미국의 교배형’ 체제가 통치 모델이 된 것이다. 일본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성장할 수는 없는 체제였다. 패전 이후 일본에서는 ‘미일 교배형’체제에서 국가 최상층에 의한 계획과 보호가 필수라는 사고가 자리 잡았다. 정치적인 발전 대신 일본은 경제성장을 이루려면 세계경제 대국이 됐다. 저자는 일본의 전후 기간은 히로히토가 세상을 떠난 1989년까지라고 말한다. 1990년대 꺼지기 시작한 일본 경제 거품의 정체는 청산되지 못한 역사의 찌꺼기라고 다우어 교수는 보고 있다. 그는 “진작 무너졌어야 할 일본의 전후 시스템이 뒤늦게 사라지게 됐으며, 그로 인한 결말은 아직 알 수가 없다”고 책을 마무리 한다. 4만5,000원. 조용래 한국일본학회 분과 일본정경사회학회장의 ‘천황제…’도 전후 미국 점령군의 실용주의가 일본 지배층의 형식주의와 만나 천황제 유지와 평화헌법 탄생이라는 결과를 얻었다고 해석한다. 저자 역시 천황제가 전후 일본의 민주주의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기형적인 형태를 취했고, 일본 사회의 모순을 잉태하는 근거가 됐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동아시아 자유민주주의 군사기지로 만들려 했던 미국의 야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때문에 미국은 천황제를 유지해주는 한편 전쟁 포기를 규정한 일본 평화헌법을 미국에 유리한 쪽으로 왜곡하는 방법을 고심했다. 이 틈을 타 일본 보수세력은 천황을 평화의 화신으로 포장하면서 군비증강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일본 근현대사의 본질을 살펴보려면 천황제라는 암호를 풀어야 한다고 전제한 책은 천황제 유지가 현재까지 일본 사회를 왜곡ㆍ오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역사 왜곡, 정치인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재일교포와 오키나와 주민들, 아이누족에 대한 차별 등 일본의 국내외 현안은 모두 천황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4만5,000원.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