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분식회계 赦免’의 필요성

기업들의 과거 분식회계에 대한 사면여부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사실 기업들의 분식은 모든 경제주체들이 쉬쉬하면서 서로 덮었을 뿐 마치 시한폭탄을 등에 진 것처럼 누구나 마음졸였던 문제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 지 가늠조차 어려울 정도로 환부의 뿌리도 깊었고. 따라서 사면을 하든, 법과 원칙을 예외없이 엄정하게 적용하든 후유증은 짙게 남을 것이다. 더욱이 수십년동안 관행적으로 자행해 온 기업들의 행위에 대한 분노와 실망, 그리고 해외 자본시장이 우리 기업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들을 생각하면 사면이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철저히 현실에 입각, 대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결코 당위나 명분에 치우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한번 곰곰히 따져보자. 과연 이 나라에, 특히 수십년된 기업가운데 분식회계로부터 자유로운 곳이 얼마나 될까. 더러 일찍이 문제를 인식, 오랜기간 조금씩 털어낸 기업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했다. 이제 경영의 투명성, 기업의 신뢰를 높이지 않고서는 생존자체가 불가능한 환경이 됐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듯 이 또한 하루아침에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SK글로벌 사태가 단적인 예다. 검찰도 수사발표에서 `SK글로벌의 분식회계는 20~30년에 걸쳐 부실이 누적돼 온 것`이라고 분명히 짚었다. 70년대 정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따라 외형성장을 추구하면서 발생한 부실이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눈덩이처럼 커졌다는 설명이다. 그러면 왜 기업들은 분식의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장부조작의 관행을 뿌리치지 못할까. 그것은 분식회계로 얻는 일시적인 이익이 비용보다 크기 때문이다. 장부조작을 해야 주가가 떨어지지 않고 자금조달에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지난 날 일반대출과 무역금융의 금리차이를 생각하면 금방 납득이 가는 일이다. 게다가 부실이라도 좋으니 재무제표를 예쁘게 포장해 달라는 채권금융회사와 주주들의 요구도 `분식회계 권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한 몫 거들었다. `투명ㆍ윤리경영에 바탕한 신뢰제고`는 이제 모든 기업의 화두고 명제다. 누구도 이 대세를 거슬러서는 살아남지 못한다. 기업들도 잘 안다. 그러나 그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기에는 어깨를 짓누르는 `과거의 짐`이 너무 무겁다. 경우는 다르지만 폭증하는 불법이민의 사회문제화로 골머리를 앓던 미국이 지난 2000년 12월, 당시 사문화됐던 이민법 245조(i)항을 한시적으로 되살려 불법체류자들을 일거에 구제한 것이 반면교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미국은 그때 약 4개월간의 유예기간을 주고 불법체류자들이 벌금 1,000달러를 내고 정식으로 이민수속을 밟으면 합법적인 신분으로 바꿔줬다. 이는 미국정부가 사실상 노동시장의 한 축을 이루는 불법이민자들을 제한적으로 사면함으로써 경제에 타격을 주지 않고 국고수입도 늘리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케이스로 심심치 않게 인용된다. 지금 우리는 한 시대, 어두운 그늘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고 있다. `분식회계의 망령`도 그 중 한가지다. 과거와의 단절은 결단이 필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상황의 불가피성, 즉 옥석을 가릴 합당한 기준을 정한 뒤 일괄사면할 것을 제안한다. 기왕이면 부실을 털어낼 시간도 넉넉하게 주고. 일단 원칙을 정하면 나머지 가닥을 헤아리기는그리 어렵지 않다. 죄가 아무리 미워도 기업은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이종환(산업부장) jwle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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