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국제금융시장 급변하는데…
김인영 inkim@sed.co.kr
최근 세계 경제에서 가장 빠르게 변하는 곳이 금융산업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글로벌 단일 경제체제가 형성된 것이 20년이 채 되지 않지만 세계 경제는 금융산업에 의해 개벽되는 느낌이다. 세계 금융산업의 빠른 변화를 보면, 이러다가 한국 금융산업이 다 망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몇 가지 팩트를 들여다보자.
첫째, 세계 총생산(GDP) 대비 금융자산의 비율은 지난 80년에 109%였는데 2005년엔 316%로 급증했다. 그만큼 자산시장의 거품이 커졌다는 얘기일수도 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선 금융산업이 발전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둘째, 은행의 기능이 약해졌다. 전세계 자산 중 은행예금의 비중이 80년 42%에서 2005년에 27%로 줄었다. 세계인들이 더 이상 은행에 돈을 예치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은행이 예금을 받아 대출해 예대마진을 얻는 시절도 끝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셋째, 국제금융시장의 주체가 변했다. 과거엔 투자은행이 증권시장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펀드가 주인공이다. 펀드의 발전은 가히 비약적이다. 사모펀드의 원조인 헤지펀드는 90년 600여개에서 올해 9,500개로 급팽창했다. 돈을 벌어 은행에 예금하지 않고 펀드에서 돈을 굴리는 시대로 전환한 것이다. 사모펀드의 자산이 같은 기간에 6,800억달러에서 4조3,000억달러로 불어났다. 헤지펀드가 발전해 블랙스톤이니ㆍKKR이니 하는 대형 사모펀드가 뉴스의 전면을 장식하는 것도 요즘 금융산업의 현실을 반영한다.
이처럼 국제 금융시장이 급속한 속도로 변화하는 것은 세계 경제의 축인 미국이 금융산업의 규제를 해제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90년대에 이른바 금융산업의 장벽을 쌓아놓았던 글래스스티걸법안을 폐기했다. 그 이후 미국 금융산업은 양적ㆍ질적으로 팽창하고 세계 금융시장을 하나로 통합하는 역할을 했다.
한국도 외환위기 이후에 100조원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은행을 살렸다. 지난해 은행들이 10조원 가까운 수익을 낸 것도 국민의 혈세로 그들을 살려낸 결과다. 정부가 죽어가는 은행산업을 살리는 데 역점을 두다 보니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에는 등한시한 것도 사실이다. 동아시아 금융허브 정책을 추진했지만 해외 금융기관을 유치한 실적은 전무하다. 그 이유는 규제를 해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산업에 덕지덕지 붙은 규제를 놓아둔 채 금융허브를 외쳐온 것이다. 최근 들어 자본통합법(자통법)을 만들어 투자은행 부문의 벽을 허물면 한국에서 골드만삭스ㆍ메릴린치와 같은 거대 투자은행이 나올 수 있다는 또 다른 착각을 하고 있다.
한국의 지도층들은 삼성전자ㆍ현대자동차ㆍ포스코처럼 제조업 부문에선 국제경쟁력을 갖는데 금융 부문이 낙후했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래서 금융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자고 목청을 높인다.
금융업계의 문제도 있다. 은행들은 덩치만 커졌지 질적으로 발전을 하지 못했다. 영업도 아직까지 우물 안 개구리식이다. 주택담보대출 시장에 경쟁적으로 덤볐다가 중소기업 대출에 몰리는 쏠림 현상은 여전하다. 외국에는 한발도 나가지 못한 채 국내에서 치열하게 밥그릇 싸움을 벌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말로는 해외 경영을 외치지만 감히 글로벌 금융산업과 경쟁하길 피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더 이상 제조업만으로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전했다. 금융산업이 또 다른 수레바퀴로 버텨주지 않으면 경제가 굴러가기 힘들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금융산업은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젠 선진 금융강국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수만명의 근로자가 라인에 붙어 벌어들이는 돈을 한 사람의 머리로 해결하는 게 금융산업이다. 그러자면 세계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정부는 금융산업에 남아 있는 규제를 대폭 해제하고 금융업도 인재 양성에 돈을 펑펑 써야 할 때다.
입력시간 : 2007/07/05 1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