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 리포트', '토탈 리콜'을 만든 필립 K.딕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고 해서 이 영화를 SF 액션으로 기대했다간 실망할 수도 있다. 3일 개봉한 영화 '컨트롤러(원제 The Adjustment Bureau)'는 SF의 외피를 입은 듯하지만 사실 로맨스다. 거대한 힘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 속에서 흔들리는 개인의 정체성을 이야기해온 필립 K.딕의 주제의식은 그대로지만 이 작품에서 그가 얘기하는 것은 오로지 사랑이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유치하고 낯간지러운 대사와 설정에도 불구하고 기분 좋은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젊고 유망한 정치인 데이비드 노리스(맷 데이먼)는 경박한 언행으로 구설에 시달리다가 상원의원에 낙선한다. 정치 생명이 위태로워진 이 때 우연히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무용수 엘리스(에밀리 블런트)와 만나고 엘리스에게 영감을 얻은 그는 신선한 연설로 다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정치 추리극으로 보이는 도입부는 중절모를 쓰고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들이 등장하면서부터 급속히 바뀐다. 중절모 남성들의 정체는 사람들의 운명을 계획하는 '조정국'의 요원. 이들은 어떤 이유에선지 데이비드와 엘리스의 만남을 가로막으려고 하고 이를 알게 된 데이비드가 운명에 맞서 사랑을 찾으려고 고군분투한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 정해진 운명을 초월한다는 내용은 '조정국'이라는 설정 속에서 액션 스릴러처럼 펼쳐진다. 문을 통과하면 순간 이동을 하는 설정이나 태블릿 PC 같은 책에 쓰여진 운명이 바뀌는 모습 등은 영화를 흥미있게 만드는 볼거리다. 물론 "진정한 키스는 운명을 바꾼다"는 식의 디즈니 만화에서나 볼 법한 유치한 대사는 헛웃음을 자아내지만 덕분에 운명에 맞서 긴박하게 쫓고 쫓기는 이들의 추격을 더욱 간절하게 만든다. 유망한 정치인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운명에 맞선다는 설정은 주인공인 맷 데이먼의 듬직하면서도 섬세한 연기와 잘 어울리고 한 눈에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매력의 여주인공 에밀리 블런트의 연기도 빛을 발한다. 가볍게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