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일 10언더파, 68홀 연속 '노 보기', 코리안 군단 시즌 첫 승.
격이 다른 우승이었다. 박인비(26·KB금융그룹)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매뉴라이프 파이낸셜 클래식에서 역전극을 연출하며 '우승 가뭄'에서 시원하게 벗어났다.
박인비는 9일(한국시간) 캐나다 온타리오주 워털루의 그레이사일로 골프코스(파71·6,330야드)에서 열린 대회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무려 10개의 버디를 쓸어담아 10언더파 61타(최종합계 23언더파 261타)를 쳤다. 크리스티 커(미국·20언더파)를 3타 차로 따돌린 그는 지난해 6월 US 여자오픈 우승 이후 11개월여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활짝 웃었다. 자신의 시즌 첫 승이자 투어 통산 10번째 우승.
여러모로 1승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가진 쾌거였다. 무엇보다 세계랭킹 1위에서 물러난 직후 우승을 차지하면서 분위기를 전환했다. 박인비는 지난주 끝난 숍라이트 클래식에서 우승한 스테이시 루이스(29·미국)에게 59주간 지켰던 1인자 자리를 내주고 2위로 밀렸다. 박탈감에 따른 후유증이 우려됐지만 일주일 만에 우승으로 응수하며 1위 탈환의 발판을 만들었다. 루이스는 물론 호시탐탐 1위 자리를 노리는 3위 뉴질랜드교포 리디아 고(17)와의 격차도 벌렸다.
'US 여자오픈 괴담'을 불식시킨 것도 성과다. 박인비는 지난 2008년 US 여자오픈에서 첫 우승을 메이저 타이틀로 장식하며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이후 2012년 다시 LPGA 투어 대회에서 우승하기까지 무려 4년이 걸렸다. 지난해 US 여자오픈 제패 뒤 우승 가뭄이 이어지자 호사가들은 징크스로 연결지었다. 골프를 그만둘까 생각할 정도로 심한 마음고생을 했던 박인비 역시 이날 인터뷰에서 "2008년과 같은 일이 올해 되풀이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코리안 군단의 '에이스'로서 우승의 물꼬도 텄다. 한국 선수들은 지난해 박인비의 6승을 포함해 11승을 합작했으나 올 들어서는 13개 대회를 치르면서 우승컵을 만져보지 못했다. 교포 선수들인 미셸 위(25)와 리디아 고가 2승을 올렸을 뿐이다. 집단 무기력증에 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주 무기인 퍼트 감각을 찾은 것 역시 큰 성과로 평가된다. 박인비는 이번 대회 72홀을 돌면서 모두 108차례 퍼터를 잡았다. 최종일 25개 등 하루 평균 퍼트 수는 27개로 수준급이었다. 펑산산(중국)에 2타 뒤진 공동 2위로 4라운드를 출발한 그는 거리를 가리지 않고 퍼트를 홀에 쏙쏙 떨궜다. 8번홀(파4)에서 5번째 버디를 잡아 단독선두로 치고 나간 뒤 정상까지 치달았다. 14번홀(파4)에서는 15m가량의 장거리 퍼트가 자석에 이끌리는 것처럼 홀 속으로 떨어지자 동반한 펑산산과 미셸 위가 기에 질린 듯 퍼트를 턱없이 짧게 하는 장면도 나왔다. 박인비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비디오 자료를 분석해 지난해의 퍼트 스트로크를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이는 역전 우승과 LPGA 투어 최종라운드 최소타 기록으로 이어졌다. 1라운드 4번홀에서 유일한 보기를 기록한 후 68홀 동안 보기를 적어내지 않은 것은 드라이버와 아이언 샷, 퍼트 등 경기력이 무르익었음을 방증한다.
아울러 박인비는 한국 선수 세번째로 LPGA 투어 통산 두자릿수 승수를 쌓았다. 그보다 많은 우승컵을 수집한 선수는 박세리(37·KDB산은금융·25승)와 올해 일본으로 주 무대를 옮긴 신지애(26·11승)뿐이다.
리디아 고는 공동 4위(16언더파), 미셸 위는 세계 1위 루이스와 함께 공동 6위(15언더파)로 대회를 마쳤다. 최운정(24·볼빅)과 지난해 우승자 박희영(27·하나금융그룹)은 각각 공동 8위(14언더파), 공동 10위(13언더파)로 톱10에 입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