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림박물관 신사분관 3일부터 '분청사기제기전'<br>조선초기에 만든 120여점 전시
| 둥그스름한 타원형 제기인 궤는 하늘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각형의 보와 함께 '하늘과 땅', '음양'의 짝을 이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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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개국한 조선은 예치(禮治)를 내세웠고 특히 국가제사인 길례(吉禮)는 왕실의 권위와 명분을 세우는 중요한 행사였다. 이 때 사용되는 의례용 그릇은 원래 금속으로 만들어야 했으나 일본에서 들여오는 동(銅) 수급이 여의치 않자 자기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도 허락됐다.
15세기 조선 초기에 제작된 분청사기(粉靑沙器) 제기 120여 점을 선보이는 '분청사기제기전'이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3일부터 막을 올린다. 도자 제기만을 이처럼 대규모로 모은 전시는 국내 최초이며 외국에서도 유례가 드문 귀한 자리다.
제상(祭床) 가장 중앙에 놓여 벼ㆍ기장 등 곡식을 담은 보(簠)라는 그릇은 반듯한 사각형으로 만들었고, 나란히 올린 궤(簋)라는 그릇은 둥그스름한 타원 형태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옛 사람들의 우주관을 반영한다. 궤는 둥근 하늘과 양(陽)을, 보는 사각 땅과 음(陰)을 상징한다. 궤는 손잡이에 상서로운 동물장식이 붙어있고 뚜껑 위쪽에 납작한 조각 장식이 덧붙어 마치 공룡처럼 보인다. 보는 물결ㆍ당초ㆍ꽃 문양으로 장식돼 그릇 자체가 한 폭의 산수화와도 같다. 이들 그릇은 '세종실록' 중 '오례'(1454년)와 '국조오례의'(1474년)에 수록된 제기 모양과 용도에 부합하는 작품들이다.
제사용 항아리인 준(尊)은 계절과 용도별로 다양하다. 산에 구름이 있는 형상이 새겨진 산준(山尊)은 가장자리에 톱니장식(鋸齒)이 붙어 있다. 왕이 신하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을 상징한 그릇으로, 청주나 맑은 찬물을 담는 데 쓰였다. 소(牛)의 형상을 새기거나 소 모양으로 만든 희준(犧尊), 코끼리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민 상준(象尊) 등은 쉽게 볼 수 없는 유물이다. 제상의 맨 앞에는 술잔인 작(爵)이 놓였다. 타원형 아가리에 3개의 다리가 있는 형태가 참새 같다고 해 발음이 같은 작으로 불렸다.
3층에는 각종 예서에 수록된 형태에 부합하는 유물만 모은데 비해 2층은 일상 생활용기를 제기로 활용한 작품들이 전시됐다. 등이 납작한 '자라병'과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를 가진 '매병'들은 같은 지역에서 출토된 것이라 동일한 모란ㆍ당초문을 갖고 있다.
금속으로 만들던 제기를 도자기로 빚은 것이라 복잡한 장식을 간략하게 생략한 경우도 있으나 분청사기 특유의 질감이 투박하면서도 성의 있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 유진현 학예연구원은 "분청사기 제기가 완전한 형태로 일괄세트를 갖춘 사례가 드물어 도자사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전은 오는 11월28일까지 계속된다.
한편 4층에서는 상설전 형식으로 '명품도자전'이 열리고 있다. 국보 222호 백자청화매죽문호 등 국보 3점, 보물 12점 등 청자ㆍ백자ㆍ분청사기 30여 점을 볼 수 있다. (02)541-3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