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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후 강원도 동해시 동해항. 길이 147m, 폭 38m의 한진해운 운반선 '파이오니어' 위에서는 케이블 선적 작업이 한창이었다.
검정색 바탕에 노란 줄이 그려진 직경 200㎜의 해저케이블은 턴테이블에 둥글게 말려 배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직경 35m 크기의 거대한 턴테이블은 분당 5~10m의 속도로 쉼없이 해저케이블을 내보냈다. 두 대의 턴테이블에 각각 50㎞ 길이의 해저케이블이 다 감겨지는 17일쯤 파이오니어호는 목적항인 카타르의 라스 라판항을 향해 닻을 올린다.
생산 최대량이 860㎞(132KV 기준)로 세계 5위권을 자랑하는 LS전선 동해공장은 지난 추석 연휴에도 가동될 정도로 분주했다. 공장은 물론 배 위 턴테이블 위에서는 엔지니어들이 케이블이 제대로 운반되는지 꼼꼼하게 살피며 24시간 3교대 근무를 하고 있었다.
배 위의 턴테이블로 해저케이블이 말려지는 중간 중간에 엔지니어들은 연신 하얀 석회가루를 뿌려댔다. 1차분 선적 작업에 쓰이는 석회가루만 해도 400㎏. 김낙영 해저시공팀장은 "케이블을 도포한 표면의 재질이 아스팔트와 비슷한 소재로 돼 있어 뜨거운 햇빛에 제품이 녹아내려 케이블끼리 붙을 수 있기 때문에 중간중간에 석회가루를 뿌려 이런 현상을 막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1차분 50㎞ 두 개의 선이 파이오니어를 통해 운반되면 내년 3월에 2차분 50㎞ 두 개의 선이 카타르로 옮겨진다. 1차분 해저케이블은 10~12월, 2차분은 내년 4~6월에 우리 기술로 바다 속에 매립될 예정으로 내년 12월 모든 공사가 마무리된다.
앞서 LS전선은 지난 2012년 11월 카타르 석유공사(Qatar Petroleum)로부터 4억3,500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5,000억원) 규모의 해저케이블 주문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LS전선이 해외 해저케이블 시장에서 처음으로 수주한 대형 프로젝트로 국내 전선업계 역대 최대 규모 수출계약이다.
이인호 LS전선 동해생산부문장은 "바람이나 파도 등 바다 위라는 특수한 환경 조건을 극복하고 해저케이블을 바다 속으로 떨어뜨려 정확하게 매립하는 기술이 핵심"이라며 "제이피에스(JPS), 비스카스(Viscas) 등 해저케이블 분야에 오랜 노하우를 지닌 일본업체는 물론 글로벌 1, 2위인 프리스미안(Prysmian)과 넥상스(Nexans)가 만든 컨소시엄을 제치고 카타르 프로젝트를 수주한 것은 LS전선의 제품력과 기술력 등이 우수한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LS전선의 해저케이블은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북쪽으로 80㎞ 떨어진 라스 라판 산업단지(Ras Laffan Industrial City)와 할룰(Halul)섬을 잇는 데 사용된다. LS전선이 100㎞ 거리에 두 개의 선로를 바다 밑에 설치하면 총 200㎞의 132kV급 케이블에는 200MW의 전력이 흐르게 된다.
LS전선은 해저케이블 설치 뿐만 아니라 라스 라판 지역의 육상공사와 할룰섬 내 신규 변전소 건설, 기존 변전소 연결까지 모든 공사를 일괄 수주했다. 시공뿐만 아니라 자재 조달, 시운전 수행, 감리까지 풀 턴키(full turn-key)로 계약을 따내 시공사로서 능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 해저케이블은 최고 수준의 기술력이 집약된 제품으로 '케이블의 꽃'으로 불린다. 유럽과 일본 업체들이 독점해 온 해저케이블 시장에 순수 국내 기술로 진출하게 됐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다.
지난 2009년 11월 준공된 동해공장은 인동·구미공장에 이은 LS전선의 세 번째 제조기지다. 동해항 바로 옆에 있어 해저케이블 수출에 유리하다. 약 22만㎡(6만 5,000평)의 동해공장은 해저케이블과 더불어 풍력, 선박 및 해양 플랜트, 함선, 원자력 등 산업용 특수 케이블을 생산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