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혼다(민주·캘리포니아)·찰스 랭글(민주·뉴욕)·스티브 이스라엘(민주·뉴욕)·빌 파스크렐(민주· 뉴저지) 하원의원은 21일 미국 하원 본회의장에서 특별연설을 통해 “아베 총리는 이번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과거의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밝혔다.
의원들의 이날 연설은 일주일 뒤 아베 총리가 상·하원 합동연설을 할 하원 본회의장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상당한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이날 연설은 지난 2007년 미국 하원 청문회에 나와 증언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7) 할머니가 직접 참관한 가운데 이뤄져 더욱 주목을 받았다.
혼다 의원은 연설에서 이 할머니가 일제당시 위안부로서 겪었던 참상을 거론하면서 “이 할머니는 전체 20만 명의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아직 살아있는 100명 미만의 생존자들의 한 명”이라며 “이 할머니를 포함해 이미 세상을 떠난 수십만 명의 영혼들이 아직 정의와 평화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혼다 의원은 “아베 총리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일본과 진주만 침공 이튿날인 1941년 12월8일) 대(對)일본 선전포고 연설을 한 곳에서 역사적인 상·하원 합동연설을 한다”며 “아베 총리는 일본 정부를 대신해 완벽하고 명백하며 공식적인 사과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일본이 충분히 사과했다면서 이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며 “그러나 최근 일본의 지속적인 역사수정주의적 시도를 보면 우리가 평화와 화해를 위해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일본 정부는 두 걸음씩 후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2차대전 종전 70주년이 된 지금이야말로 바로 아베 총리가 명백하고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과를 해야 할 때”라며 “아베 총리에게 있어 이번 연설이 과거의 잘못에 대해 최종적이고 확고하게 사과하고 미래 세대들을 정직하고 겸손하게 가르치는 특권이 될 수 있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의원은 “아베 총리는 이번 연설을 통해 성노예로 끌려간 수십만명의 여성들에 대한 잔학행위를 솔직하게 자백해야 한다”고 밝혔다. 파스크렐 의원은 “아베 정권은 1930∼40년대 식민지 여성들이 겪었던 치유할 수 없는 상처와 고통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레이스 멩(민주·뉴욕) 의원은 직접 연설을 하지 않았지만, 공식 의사록에서 “위안부에 대한 역사의 기록은 가감 없이 보편적으로 수용돼야 한다”며 “1993년 고노 담화는 희생자들에게 사과하고 일본군의 책임을 인정했지만 일본 정부 관리들은 이 담화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멩 의원은 “이 같은 갈등은 성공적인 한·미·일 3자 관계에 방해가 되고 있다”며 “아베 총리가 이번 연설을 통해 고노 담화를 무력화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듯한 언급들에 대해 분명히 해명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연설을 한 의원들은 모두 친한파이지만 미·일 안보·경제협력과 별개로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에 대한 미국 의회 내부의 부정적인 기류를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미국 언론에 이어 의회까지 나서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명시적 반성과 사과를 촉구함에 따라 아베 총리로서는 29일 상·하원 합동연설을 앞두고 커다란 압박감을 느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일 미국에 도착한 이용수 할머니는 워싱턴 정신대대책위원회(회장 이정실) 관계자들과 함께 본회의장 방청석에 출석해 의원들의 발언을 청취했다.
이 할머니는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나 “아베 총리가 미국에 온다기에, 내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당당하게 말하기 위해 왔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 할머니는 이어 “(아베 총리는) 역사의 증인들을 똑똑히 보라”며 “죄를 지었으면 그에 대한 사과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44년 16세 때 대만에 위안부로 끌려가 3년간 일본군의 성노예로 전락했던 이 할머니는 2007년 2월15일 미국 하원 청문회에 나와 위안부로 끌려가게 된 과정, 일본군들로부터 겪은 수모와 강간 등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낱낱이 증언한 바 있다.
의원들의 이날 연설은 아베 총리의 방미를 앞두고 의회를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펴고 있는 일본 측이 인지하지 못하도록 사전 예고 없이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