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 이스라엘 '엘라의 계곡'에서 2m가 넘는 키에 청동 갑옷과 긴 창으로 중무장한 골리앗과 마주 서 있던 양치기 소년 다윗의 심정에 감정이입을 해본다. 성경에 쓰인 대로 하나님의 총애를 받고 있다 하더라도 밀려오는 두려움을 완벽히 떨쳐내기는 힘들다. 지팡이와 돌멩이 하나씩만 가진 자신이 상대에 비해 한없이 초라하고 무기력해 보이기도 한다. 내가 던진 돌멩이가 빗나가면 어쩌나 걱정하는 마음도 든다. 그러나 다윗은 단 한 번의 침착한 돌팔매질로 거구의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승리를 거머쥐어 수천년 동안 이어져온 이야기의 주인공이 됐다. 사람들은 강자를 상대로 한 약자의 극적인 승리에 환호하게 마련이다.
지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와 마찬가지로 승산 없는 싸움, 무모한 도전 등을 비유하는 표현에 단골로 등장한다. 이런 표현들에는 오래전 다윗의 승리가 특별한 재능과 천운을 가진 어느 개인의 기적 같은 일회성 승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하지만 최근 '다윗과 골리앗'이란 책을 펴낸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이 이야기에서 약자가 불리함을 극복하고 강자에게 승리하는 비법을 찾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다윗의 승리요인을 기존의 법칙을 거부하고 완전히 다른 창조적 시각으로 바라본 데서 찾았다. 다윗은 일대일 근접 전투라는 골리앗이 원하는 싸움 규칙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전투방식인 원거리 돌팔매질로 골리앗을 무너뜨린 것이다. 다윗의 승리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엘라의 계곡 전투는 지금도 글로벌 비즈니스 세계에서 계속되고 있다.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이 시대의 다윗들이다. 엘라의 계곡을 품고 있는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의 선전이 눈부시다. 이스라엘은 700만의 인구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나스닥 기업공개(IPO)를 이뤄낸 나라다. 최근 외신에서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는 어느 스타트업이 스마트폰 배터리를 30초 만에 100퍼센트 완충할 수 있는 충전기 시제품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남들이 배터리의 지속시간을 늘리려고 고민하고 있을 때 이 스타트업은 순식간에 배터리를 완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게임의 기본 법칙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최근 미국특허전문기관인 IPIQ에서 전세계 연구소와 대학·정부기관 등 288개 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3년도 미국특허 종합평가 공공 부문에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3년 연속으로 세계 1위를 달성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0위 안에 우리와 대만을 제외하면 모두 특허 부문 세계최대 강국 미국의 대학과 연구기관들이 포진해 있다는 점에서 조심스럽게 다윗의 승리에 비견할 만한 성과로 자부하고 싶다. 미래창조과학부는 ETRI가 보유한 103건의 특허기술 중 92개를 중소기업에 최근 무상으로 양도했다. 이 특허들이 글로벌 비즈니스 전장에 나서는 중소기업들에 골리앗을 이길 수 있는 다윗의 돌멩이 같은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래전 엘라의 계곡에 서 있던 다윗은 어쩌면 외롭고 고독했을지 모른다. 21세기 엘라의 계곡에 서 있는 이 땅의 수많은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들이 외롭지 않게 자신만의 창의적인 방식으로 당당하게 도전할 수 있도록 곁에서 적극 지원해주는 것이 창조경제시대 정부의 역할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