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4월 22일] <1677> 참을 수 없는 법


'식민지인들은 백성을 괴롭히고 상인을 약탈하며 배에 불을 질렀다. 모든 권위와 법률을 부정하는 행위를 더 이상 참지 않겠다.' 노스 영국 총리의 1774년 4월22일 의회 발언 요지다. 영국이 전례없이 강한 어조로 아메리카 식민지를 비난한 이유는 보스턴 차 사건. 과격파가 보스턴항에 입항한 동인도회사의 선박에 올라 1만8,000여파운드의 차 상자를 바다에 던져버린 데 대한 반작용이다. 참지 않겠다던 영국은 5개의 강제법을 잇따라 제정, 식민지를 압박해 들어갔다. 먼저 보스턴항을 봉쇄하고 매사추세츠주의 자치권을 거뒀다. 반영 분위기가 강한 이 지역부터 고립시켜 나머지 식민지의 순종을 이끌어낸다는 계산이었으나 오히려 반발만 샀다. 영국군대가 아무곳에나 숙박할 수 있도록 규정한 숙영법과 본국의 직할재판권을 강화한 법도 마찬가지로 반영감정을 키웠다. 마지막으로 캐나다 가톨릭계 주민의 자치권과 영역을 확대한 퀘백법 제정이 알려지자 서부를 개척하려는 신교도가 대부분인 식민지가 들끓었다. '5개 강제법은 참을 수 없는 법(Intolerable Acts)'이라며 1774년 여름과 가을 내내 영국군과 대치하며 관리들을 내쫓은 매사추세츠주의 저항은 식민지 전역으로 번진 끝에 1774년 말 1차 대륙회의 소집으로 이어졌다. 영국이 '더 이상 참지 못해' 만든 강제법을 '참을 수 없다'며 맞섰던 식민지의 갈등은 결국 독립전쟁으로 번지고 미국을 탄생시켰다. 영국이 이성적이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일찍이 수학과 경제학의 접목을 시도한 학자 출신의 정치인 에드먼드 버크의 주장대로 식민지에 온건책을 사용했다면 영국의 손실이 덜했을지도 모른다. 강경책은 당장은 시원하지만 화를 부른다. 정교하지 못하거나 거짓이 깔린 경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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