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일본경제 부활의 교훈

이 경 현대경제硏 선임연구원 국제지역학 박사

2004년 한국은 지난 90년대 초 일본경제에서 나타났던 장기불황과 유사한 양상을 보여 경제위기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물론 현 한국경제는 당시 일본 장기불황 때 나타났던 원인ㆍ현상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아울러 일본 불황기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해도 불황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일본의 불황이 왜 10여년이나 지속됐으며 어떻게 불황에서 회복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경제의 불황은 당시 기업의 부동산 과잉투자, 주가와 토지가격 하락, 은행의 자금회수 확대, 기업부도 증가에 따른 금융권의 대규모 부실자산에서 발단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보이고 있는 태도와 유사하게 당시 일본정부도 불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안이한 자세와 정책 혼선이 있었다. 그리고 경기회복을 위한 초저금리 기조로 인해 통화당국의 정책운영 수단이 제한되면서 재정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책은 엄청난 재정적자만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편 최근 다수의 우리 기업들이 중국 등 해외이전을 늘려 국내 제조업 공동화가 우려되는 상황과 비슷하게 당시 일본기업들도 고비용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시킴으로써 투자감소ㆍ내수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대체 산업군을 육성하는 데 소홀해 결국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일본의 장기불황을 초래했다. 그런데 일본이 최근 10여년의 장기불황에서 경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경제 회복과 중국경제의 성장에 따른 수출경기 호조가 일본기업의 투자회복과 내수로 이어져 경기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 불황기 때는 수출경기 호조가 기업투자와 내수진작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상황이 최근 어떻게 변했을까. 일본 불황기에는 사회 전체 불안감이 확산된 가운데 정부 주도의 경기부양책이 재정지출이 끝나면 효력이 소멸해버린 반면, 이제는 기업이 자신감을 되찾아 투자하고 개인은 소비하는 민간주도 경기회복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면 일본경제가 부활하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정부와 기업의 방향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먼저 정부는 정책혼선을 최소화하고 일관성 있는 정책기조로 기업과 가계의 불안심리를 해소해야 한다. 일본정부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부실채권으로 야기될 피해를 애써 회피하다 장기불황의 원인이 됐던 점에 비춰, 우리 정부도 때를 놓치지 말고 적기에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갖도록 지도력을 행사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국내수요 제고방안보다 수요창출을 유발할 수 있는 산업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기업투자 진작책을 우선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일본정부는 불황기에 내수진작을 위해 무리한 재정정책을 실시해 오히려 경기회복이 아닌 재정적자만 낳았다. 이와 함께 정부는 기업을 편하게 해주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우리가 민간 주도의 경제성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업의 역할이 강화돼야 하며 이를 위해 노사관계 안정과 규제완화를 통해 국내투자뿐만 아니라 해외투자를 적극 유치해야 한다. 또한 기업이 첨단산업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과감한 인센티브를 부여해줌으로써 기업이 기술을 개발해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도록 하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기업의 측면에서 보면 최근 일본기업의 경쟁력은 일본 문화배경과 서구식 경영기법을 접목시킨 일본식 구조조정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기술력ㆍ아이디어를 창출해 이를 제품화하는 기업들의 근성, 근로자들의 조직에 대한 충성도, 종업원을 배려하는 기업인의 자세가 어우러져 나타난 결과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기업도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식 구조조정을 통해 제조업의 대량생산시스템에서 벗어나 신기술 개발과 기업의 핵심역량을 발굴해 기업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 기업은 해외이전ㆍ사업축소와 같은 방어적 대응보다 이제는 생산혁신, 신시장 창출, 사업구조 고도화 등의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일본은 디지털 전자를 비롯한 ‘신 3종의 신기(神器)’와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제조업의 수출증가가 기업의 수익증대와 설비투자 증대로 이어졌다. 따라서 우리 기업도 국내외 소비자들의 수요욕구를 끌어낼 수 있는 신산업과 신제품 개발을 통해 수출증대와 내수증진을 유도함으로써 기업이 투자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는 궁극적으로 수출둔화를 막고 중국의 추격에 대비할 수 있는 제조업 경쟁력의 확보방안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기업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고 기업은 새 수익모델을 찾아 투자를 늘림으로써 각 경제주체가 자신감을 회복해 민간이 경기회복을 주도할 수 있는 상황이 돼야 한다. 초기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면 경제강국인 일본이 과거에 쌓아온 경제력을 바탕으로 극복하는 데 10여년이 걸린 장기불황을 우리는 극복하는 데 그 몇 배가 걸릴지 모른다는 점을 깊이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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