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증가로 전세계에 새로 생길 분당급 신도시만도 1만3,000개에 달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국내 건설사들이 이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가겠습니다."
임기 마지막 해를 맞은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물가안정과 함께 유독 강조하는 정책 가운데 하나가 해외건설 수주확대다. 최근 이 대통령이 두 차례나 해외건설 수주확대를 위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열 정도였다.
이에 따라 지난 2월 취임한 최재덕(65ㆍ사진) 해외건설협회 회장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와 건설업계 간 대화창구 역할을 하며 전방위 수주지원을 추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최근 사업비만도 667억달러에 달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주택 50만채 건설사업 수주지원에 매진하는 최 회장은 "해외건설 수주확대를 위해서는 중동ㆍ동남아시아와 플랜트에 편중된 수주구조를 개선해 중남미와 독립국가연합(CIS) 등 신시장을 개척하고 공종을 다변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해건협에 따르면 2007년 61억달러에 그쳤던 해외 신시장 수주금액이 지난해 181억달러로 3배 가까이 성장했다. 같은 기간 신시장 수주 비율도 전체 수주금액 대비 15.3%에서 30.6%로 두배가량 증가했다. 이처럼 국내 건설사들이 신시장에서 잇따라 수주액을 올리며 시장 다변화의 성과를 내고 있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건설업은 국민경제 성장과 궤를 같이 해온 만큼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건설산업 성장이 정체될 경우 국민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며 건설사들에 적극적인 해외진출을 주문했다. 그는 "건설 주무부처에서 30년간 공직생활을 하며 건설산업을 지켜본 결과 지금 업계가 겪는 어려움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성장통"이라며 "결국 해외시장 확대가 유일한 해답"이라고 밝혔다.
공직생활을 거쳐 건설산업연구원 원장과 대한주택공사 사장 등 건설 분야에서 40년 가까이 몸담아온 최 회장에게 건설업계의 해외시장 확대를 위한 전략과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최 회장은 "국민총소득(GNI)에서 국내건설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7년 8.5%에서 지난해 7.4%로 떨어졌음에도 건설업계의 GNI 전체 비중은 10.5%선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이는 그만큼 해외건설 시장에서 부족분을 채웠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같은 기간 GNI 대비 해외건설 비중은 1.9%에서 3.1%까지 높아졌다. 그는 "최근 해외시장 여건은 건설업이 1980년대 중동붐에 이어 다시 국가 핵심 성장동력으로 부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1965년 국내 건설사로는 처음으로 현대건설이 태국 나라티왓 고속도로를 수주한 후 47년 만인 올 상반기 해외건설 누적 수주액은 5,000억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체 수주액의 절반이 넘는 2,672억달러가 최근 5년간의 성과일 정도로 건설사들은 해외시장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최 회장은 국내 부동산경기 침체가 장기화돼 건설산업의 성장 패러다임이 해외로 전환된 만큼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 그는 특히 "정보와 금융 경쟁력 강화에 핵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반기 중 리비아ㆍ인도네시아ㆍ페루 등으로 해외지부를 확대 편성하는 한편 기존의 인도ㆍ카자흐스탄ㆍ아랍에미리트(UAE)ㆍ멕시코 지부의 홍보 및 정보수집 역량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여러 외국 업체들이 분당ㆍ일산 등 신도시 건설의 경험과 기술을 가진 국내 건설사들의 현지사업 참여의사를 타진하고 있다"면서 "협회가 해외진출의 교두보 마련에 공을 들이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단순한 신도시 건설 경험만으로 해외에서 성공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금융조달 능력 강화는 물론 보다 적은 비용으로 효율적인 공사를 진행할 수 있는 공법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우리 건설사들의 시공능력은 선진국의 90%까지 따라잡았지만 아직 일본이나 유럽 등의 선진국 건설사 수준으로 올라서기에 부족한 것은 경쟁력 있는 금융자본 조달능력"이라면서 "한국 건설사들은 시공능력만으로 놓고 보면 아직 중국에 한참 앞서 있지만 금융조달 능력은 오히려 중국 기업들보다 열세"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세계 각국이 정부 재원보다 민간자본 유치를 적극 확대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금융경쟁력이 건설 역량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출입은행ㆍ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해외시장을 늘리기 위한 자금조달 능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국내는 물론 해외 금융자본 유치를 위해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게 최 회장의 생각이다.
그는 이와 함께 현재 사우디 등 중동 각국이 발주할 예정인 대규모 도시개발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건축비 등 공사비용을 줄일 수 있는 기술력 제고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상당수 해외 발주처는 3.3㎡당 200만원 안팎의 저가 공사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400만원에 달하는 국내 건축비로는 해외에서 경쟁력이 없다는 의미지요."
그는 건축비를 줄이기 위한 기술개발은 해외는 물론 국내 주거복지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건축비 부담이 줄면 그만큼 싼값으로 서민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건설산업에 대한 정부의 인색한 지원에도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옛 건설업에 대한 정부 연구개발(R&D) 지원은 지식경제부 등 다른 부처는 물론이고 환경부에 비해서도 초라한 수준입니다. 이렇다 보니 R&D 자체를 민간 건설사에 의존하는 실정입니다. 공무원 시절 다른 부처가 가장 부러웠던 이유 중 하나가 수조원에 달하는 정책자금 지원이었지요."
최 회장이 건설업의 해외진출 확대를 위해 최근 유독 공을 들이는 부분이 있다. 바로 중견ㆍ중소 건설사들의 해외진출을 위한 보증 등 금융 시스템 구축이다. 그가 취임 후 '해외건설금융전담기구' 설립안과 중소기업 보증지원 방안 등 중소 건설업체의 해외진출 확대방안을 내놓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최 회장은 3월 서울경제신문 기고를 통해서도 "'제2의 중동붐'이 중소업체 해외진출의 기회가 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중소 건설사의 해외시장 진출은 목표는 좋지만 현실적으로 너무 장벽이 높은 게 현실입니다. 어렵게 공을 들여 좋은 프로젝트를 따내더라도 상대적으로 낮은 대외 신인도 때문에 국내외 보증기관의 보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최 회장은 대기업과 중소업체의 컨소시엄 등을 통한 동반진출과 함께 중소기업의 해외진출을 위한 금융전담기구 확대방안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는"지난해 수출입은행 건설 분야 보증액은 5조6,000억원에 달했지만 중소 건설업체는 전체의 0.6%인 317억원에 불과했다"면서 "무역보험공사와 건설공제조합은 물론 국토부와 글로벌인프라펀드 투자재원 확보를 위해 다각적인 협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특히 사업성 있는 프로젝트의 경우 담보 없이 보증서를 발급할 수 있도록 하는 보증능력 강화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시장개척지원사업 규모를 중장기적으로 확대하는 한편 중소업체의 해외진출에 들어가는 매몰비용을 보전하는 방법도 검토하고 있다.
한편 최 회장은 해외 건설시장이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해답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앞으로 3년간 해외 건설인력이 6,000명이나 부족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시장이 커지면서 인력수요는 급증하는데 해외로 나갈 사람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건설사들이 전문 기술인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동남아 출신 엔지니어를 채용하기도 하지만 기술력 차이로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 또한 고민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인력수급 불안은 1997년 IMF 당시 해외수주가 급감하면서 인력관리에 구멍이 생긴 것으로 협회는 2008년부터 '해외건설인력센터'를 강화해 인력양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해건협은 매년 300여명을 대상으로 해외 건설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을 실시, 70% 이상의 수강생을 해외 건설현장에 취업시키고 있다.
최 회장은 "협회 차원의 수요예측을 토대로 인력양성 규모를 늘리고 현장파견을 장려하기 위한 인센티브 확대방안을 국토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 최 회장은 '자연과 책, 그리고 술' 최재덕 해외건설협회 회장이 좋아하는 것 세 가지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그가 수년 전 경기도 양평에 지어 주말마다 찾아가는 전원주택이다. 그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빼놓지 않고 술을 이야기한다. 젊었을 때 그는 두주불사로 유명했다. 술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말 못할 곤혹'을 많이 겪기도 했다는 것이 지인들의 설명이다. 그가 공직을 떠나 '야인' 생활을 할 때 그의 양평 전원주택에는 방문객이 끊이지 않았다. 주변에 놀러왔다가 우연히 그의 집에 들러 술 한잔 하는 이도 있고 때로는 그와 한잔 하기 위해 일부러 먼 길을 찾아오는 지인들도 많았다. 이 때문에 용문산 근처에 자리잡은 그의 전원주택은 '용문객잔(龍門客棧)'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그는 "오래된 친구나 선후배들이 하나같이 술을 좋아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라면서 "하지만 요즘은 가능한 한 주중에는 술을 멀리 한다"고 말했다. 그가 책을 좋아하는 것은 그의 독특한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서울대 사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그는 한때 교직에 몸담기도 했고 시인이 되려는 꿈도 꿨다. "도시에만 살 때는 쉬는 날이면 책에 푹 빠져 지낼 때도 있었지만 전원생활을 접하고는 책 보는 시간을 조금 줄이고 있습니다. 오전에는 책을 보고 오후에는 산책을 하며 사색에 빠져들기도 하고 때로는 밭을 갈기도 하지요." 이 때문에 그는 도시에서 살 때와는 달리 "피가 바뀐 것 같다"면서 웃었다. 그에게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니 불교서적을 두 권 권한다. '임제어록'과 '붓다브레인'이다. 1,000여년 전 집필된 불교 고서와 최근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불교적 사고를 모티브로 작성한 책은 공교롭게도 어떤 이가 성인(부처)인지 비슷하게 설명한다고 한다. 최 회장은 '주위에 있는 사람을 즐겁고 기쁘게 해주는 사람이 부처이고 이른바 성인이다'라는 대목에 크게 공감했다고 한다. 그는 "예수의 사랑, 부처의 자비, 그리고 공자의 인(仁)과 같은 가르침은 결국 타인을 배려하고 함께 사는 세상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있다"면서 "자신과 가장 가까운 아내부터 선후배ㆍ동료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눈코 뜰 새 없는 주중에는 일에 파묻혀 지내다가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양평 전원주택에 머물면서 자연과 책ㆍ술을 벗삼는 그의 모습에서 꽤나 멋진 인생 2막을 시작하고 있다는 느낌이 전해져왔다. ◇ 약력 ▦1948년 대구 ▦1974년 서울대 국어교육과 졸업 ▦1976년 행정고시 18회 ▦1993년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 국토계획과장 ▦1997년 건교부 주택도시국장 ▦2002년 건교부 차관보 ▦2003년 건교부 차관 ▦2005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 ▦2007년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위원 ▦2008년 대한주택공사 사장 ▦2012년~ 해외건설협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