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M&A시장의 러시아 룰렛

#상황1. 19세기 말 러시아. 차르(황제) 체제의 암담한 사회 분위기가 감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술집. 한 가운데 테이블이 놓여있고, 주위에 여남은 명의 귀족들이 빙 둘러 앉아있다. 한 명이 6연발 회전식권총(리볼러)에 한발의 총알을 넣고 천천히 자기머리에 가져간다. 노리쇠를 뒤로 당기자 일순 침묵이 흘렀고, 방아쇠는 당겨졌다. #상황2. 2002년 5월 서울. 코스닥의 디지털보이스리코더(DVR) 생산업체를 인수했던 한 투자자가 회사를 92억원에 다시 되파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새로운 인수자는 회사 통장과 도장을 넘겨받은 후 곧장 은행으로 갔다. 회사 돈 96억원을 모두 찾아 인수자금으로 빌렸던 돈을 갚았다. 업종 전망이 안 좋아 코스닥 등록 전부터 회사 매각을 추진하던 한 SI업체 사장. 등록하자 마자 보호예수가 풀리지도 않은 주식을 66억원에 매각했다.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매도가격. 회사의 회생이나 성장보다는 많은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투자자를 선택했다. 최대주주가 바뀐 직후 이 회사는 감자를 앞둔 A사를 65억원에 인수했고, 회사 돈은 A사의 최대주주에게 넘어갔다. #상황3. 2003년 10월. DVR 생산업체는 최대주주가 바뀐 지 5개월 만에 부도가 나 퇴출됐다. 다시 2003년 12월12일. 회사 인수자는 도망을 다니다가 서울지검에 횡령혐의로 구속됐다. SI업체는 최대주주가 바뀐 지 5개월 만에 다시 주인이 바뀌었고,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수십 억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던 회사는 최근 자금 악화설로 매매거래가 정지될 정도로 힘든 상황이다. 화인썬트로닉스ㆍ올에버ㆍ이론테크놀로지ㆍ벨로체피아노ㆍ화림모드 등 올해 퇴출된 많은 기업들이 최대주주가 바뀐 후 M&A 재료로 주가가 급등했다가 급락하면서 부도가 나는 전철을 밟고 있다. 모두 돈없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꾼들이 회사 내부자금을 이용해 러시아 룰렛을 하다가 실패한 경우다. 러시아 룰렛의 확률은 6분의1. 그러나 M&A시장의 러시아 룰렛인 무자본 M&A는 대부분 5발이 넘는 총알로 채워져 있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정신병 증세는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새겨 볼만하다. <우승호 증권부기자 derrida@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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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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