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저축은행 부실 대충 떠넘기는 정부

비은행권 금융사의 최고경영자(CEO) A씨는 한때 모 금융당국자로부터 솔깃한 제의를 받았다. 경영난을 겪는 저축은행이 하나 있는데 인수할 생각이 있으면 연결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당국자는 해당 저축은행이 부실자산을 안고 있기는 하지만 그 규모가 몇 백억원대에 불과하다고 A씨에게 귀띔했다. 자금동원력이 풍부했던 A씨는 그 정도의 부실이라면 충분히 메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못 가 그는 해당 저축은행 인수를 포기하고 말았다. 비공개로 기업가치를 평가해보니 부실규모가 천억원대에 육박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A씨는 금융당국자의 말만 믿고 덥석 인수했었다면 자신의 회사까지 무너질 뻔 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A씨의 사례는 저축은행권의 숨겨진 부실이 정부 발표보다 훨씬 클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아울러 금융당국이 책임을 덮기 위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저축은행 부실을 민간에 떠넘기려 하는지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요즘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주도로 전광석화처럼 진행되는 저축은행 부실처리 작업 과정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최근 예금보험공사가 본격화한 삼화저축은행 매각 입찰 과정을 보면 비상식적인 모습이 공공연히 드러난다. 모든 거래의 첫 단계는 매물 가치에 대한 자체평가. 하지만 예보는 삼화저축은행에 대한 기업가치를 알아보기 위한 실사도 하지 않고 시간에 쫓기듯 26일 인수희망자 공모를 마감해버렸다. 결국 예보는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한 기업들과 동시에 사후 실사를 벌이는 촌극을 벌이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 기업가치보다 비싸게 팔리면 금융당국과 예보는 민간에 저축은행 부실을 떠넘겼다는 비판을 사게 된다. 반대로 실제 가치보다 싸게 팔리면 특혜시비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아무리 김 위원장이 저축은행 문제를 '속도전'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하더라도 이 같은 주먹구구식 행정이 전례로 굳어져서는 안 된다. 이것은 '금융정책 신뢰성'의 문제다. 금융정책의 수준은 국가 위상과 직결된다. 세계가 우리의 금융위기 해결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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