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된다면 내 물건만 팔 필요는 없다”
식품, 의류 등을 만드는 `굴뚝`산업체라고 언제까지나 제조에만 목을 매지는 않는다. 온라인-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물건을 만들어 파는데서 나아가 자사의 유통망을 이용해 남의 물건을 팔아주는 판매대행 사업을 벌이거나, 자사 제품과 타사의 관련 제품 등을 한데 모아 판매하는 쇼핑몰을 운영하며 유통업의 영역으로 진출하는 업체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는 것. 기왕 갖춘 유통망을 이용해 수수료 수익을 올리고 고객 유치를 위한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생존 전략인 셈이다.
수익성 제고를 위해 제조업과 유통업의 벽까지도 허물어뜨리는 사업 다각화 과정에서 내수 시장을 갈라 놓던 내 땅, 니 땅의 경계는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
◇“뭉치면 산다”‥‥패션업계 `몰` 사업 한창= 패션잡화업체인 쌈지는 최근 내년 10월 인사동 한복판에 문을 열 예정인 `쌈지공예골목`에 61억5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쌈지공예골목`은 4층 높이, 연면적 1,200평 규모의 전문 공예몰로, 공예작가와 소규모 업체들이 제작하는 공예 및 문화 상품을 선보이는 복합 매장. 직영 문화공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자리는 중장기적으로 운영될 전문 매장에 수수료를 받고 내주는 임대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성공적으로 운영될 경우 문화사업 확대라는 효과와 함께 다양한 제품을 밀집시켜 선보이는데 따른 소비자 유인 효과와 수수료 수입까지 챙길 수 있는 `일석삼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패션 관련 제조업체들 가운데는 이처럼 동종 업종의 시너지 효과를 노린 대형몰 운영에 나서는 회사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의류업체의 경우 직접 운영하는 할인매장에 재고 물품을 유통시키면 자사 브랜드의 이미지 관리를 할 수 있을 뿐더러, 여러 브랜드 제품을 다양하게 갖추는 편이 소비자를 불러모으기 유리하다는 점, 또 불황기의 소비패턴 등을 감안해 아웃렛 몰 사업에 나서는 사례가 적지 않다. 세정C&C는 최근 광주직할시에 대형 아웃렛몰인 `세정아울렛`을 열었고, 중견 의류업체인 한섬도 `에프앤에프`와 공동출자 형식으로 내년중 대전광역시에 대형 아웃렛을 오픈할 계획이다.
◇식품업계 `빈 수레`활용한 윈-윈 전략= 대표적인 굴뚝산업인 식품업계도 기존 망을 활용한 판매대행에 적극 나서면서 유통 영역으로 슬그머니 발을 뻗쳤다. 농심이 최근 다국적 식품업체인 네슬레와 업무제휴를 맺고 국내 소매점포에서 커피, 이유식 등 네슬레 제품 유통을 대행키로 한 것이 대표적인 경우. 네슬레는 동네 구멍가게까지 방방곡곡 뻗은 농심의 유통망을 이용해 영업을 확대할 수 있고, 농심은 보다 다양한 제품군을 갖춰 유통 조직을 강화하는 한편 매출의 일정비율을 수수료로 챙길 수 있는 `윈-윈 전략`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업체가 대기업에 판매를 위탁하는 경우가 많지만, 상품군이 겹치치 않는다면 대기업끼리 물류나 유통관리를 서로 위탁하는 일이 많다”며 “어차피 가는 차의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이기 때문에 추가투자 없이 수입을 높일 수 있어 업계내 판매대행은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판매대행의 수수료 수입은 경우마다 다르지만 통상 판매액의 5% 이내에서 정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빙그레가 스낵류 전 제품의 판매를 삼양식품에 위탁했으며, 네슬레는 이미 음료 판매를 코카콜라에, 제과를 해태제과에 맡긴 상태. CJ는 95년 몽고간장을 시작으로 사조산업, 유동골뱅이 등 판매 대행을 전략적으로 육성, 지난해 현재 이 부문에서만 1,000억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린 것으로 집계됐다.
사업다각화의 명암 전문가에게 듣는다
- 이승일 LG경제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현재 활발하게 진전되는 업계의 사업 다각화 현상은 크게 두 가지 요인에서 비롯된다. 우서 내부적으로는, 기존 사업의 성장이 물리적으로 정체됐다는 점, 그리고 매출이 성장세를 보일 경우에도 상대적인 수익성, 즉 부가가치가 정체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엔터테인먼트나 외식사업 등 고수익 사업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내수 업체들의 주력 제조사업이 재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과거보다 현저하게 떨어지면서 변신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성장 산업의 시장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아 시장 진출 기회를 잡기 쉽다는 것이 사업 확대의 동기로 작용한다. 특히 시장 메커니즘이 고착화하지 않은 신규 업종의 경우 조금이라도 일찍 진출하는 업체가 시장 선점의 기회를 노릴 수 있다. 일부 식품업체들이 진입한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다각적인 방면으로 사업을 넓히는 데 따른 위험은 무시할 수 없다. 기업의 내부 역량이 진출분야 산업이 요구하는 성공 요인에 부합해 상승효과를 낼 수 있는지, 그리고 만일에 대비한 현금유동성을 확보했는지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신규 진출사업이 자사 역량의 관련 범위를 벗어나 아웃소싱에 의존을 해야 한다거나 시장내 경쟁 강도가 높을 경우 실패 확률은 그만큼 높아진다고 본다. 또 충분한 검토가 이뤄졌다 해도 예상밖의 변수로 소비 회복이 예측범위보다 훨씬 지연될 경우에는 신규 사업을 벌이는 것이 경영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다만, 개별 업체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재로서는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이론적으로는 비관련 사업분야로의 다각화는 리스크가 큰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부분의 경우 `관련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관련 사업으로도, 비관련 사업으로도 볼 수 있다. 기존 사업 영역에 장래성이 없다면 기업 입장에선 변신을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선점 효과`도 현재까지는 성공적으로 누리고 있다고 여겨진다.
<신경립기자 klsi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