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자유치 악영향 우려 제재 못하고 수수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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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자유치냐, 외자유치를 가장한 사기냐'
한나라당 박종근 의원은 금융감독원 자료를 인용, 최근 3년간 발행된 해외전환사채(CB)중 25%(8억1,380만달러)가 국내자금이 개입된 편법 자금조달이었다고 밝히면서 해외 CB 및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이용한 가짜 외자유치 문제가 또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이는 한국인이면서도 서류상으로만 외국인인 '검은 머리 외국인'에게 해외증권을 발행한 후 외자유치를 재료로 주가를 부양시키고, 대주주는 이에 따른 시세차익을 얻고 있다는 증권가 소문이 어느 정도 사실로 입증된 것이다.
특히 '이용호 게이트'에서 드러났듯 은행 증권 회사들이 오히려 이런 편법거래를 부추기고 있어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외자유치를 성사시켰다고 믿고 해당 기업 주식을 사는 소액 투자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자 곧바로 국내투자자의 사모형 해외CB 취득 금지 등 규제방안을 발표하겠다고 했다가 며칠도 안돼 건전한 외자유치 조달길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발을 뺏다.
정부 당국은 가짜 외자유치가 버젓이 판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외자유치 활성화라는 명분 아래 수수방관하고 있는 꼴이다.
사실 해외CB나 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악용한 허위 외자유치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 같은 외자유치 사기는 맏형인 거래소시장에서 횡행했으나 최근들어 코스닥시장에서 더욱 활개를 치고 있다.
지난해 2월 거래소시장의 현대건설 삼성물산 등 대기업들이 국내자금으로 해외CB와 BW를 발행한 것이 적발됐고 올들어서는 또다른 거래소기업인 삼애인더스트리가 가짜 해외CB를 이용해 주가조작을 일삼아 파문을 일으켰다. 이른바 '이용호 게이트'가 이것이다.
거래소기업은 전체 자금조달에서 해외CB와 BW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99년 7%, 2000년 1.3%, 2001년 상반기 1.2%로 줄어들고 있다.
반면 코스닥기업은 정부의 벤처육성정책과 외자유치 활성화 명분을 등에 업고 발행비중이 지난 99년 6.7%, 2000년 12.3%로 늘어나더니 2001년 상반기에는 1조8,327억원으로 전체 자금조달의 32%로 비중이 급증했다.
최근들어 거래소기업보다 코스닥기업의 편법 해외증권 발행이 따가운 비판을 받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해외 CBㆍBW 사기 왜 성행하나
CB란 일정 기간이 지난후 주식으로 전환하거나 원금과 이자를 갚도록 요구할 수 있는 주식연계 채권이다.
BW는 일정 기간이 지난후 신주를 살 수 있는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채권이다. CB는 주식으로 전환하면 채권이 소멸되지만 BW는 채권은 그대로 남아있는게 다른 점이다.
코스닥기업들이 해외CB를 선호하는 것은 크게 두가지 이유에서다. 가장 큰 이유는 국내CB를 발행할 경우 기업실적과 공모 목적 등 세세한 내용을 담은 유가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법의 감시망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해외증권은 국내 채권과 달리 발행국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감독 대상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두번째 이유는 해외 유수 투자가들이 채권 인수에 나섬으로써 '우량기업'임을 과시해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BW는 발행후 미리 약속한 대로 대주주가 신주인수권을 헐값에 재매수해 지분을 확대하는데 악용되고 있다.
CB 전환가나 BW 행사가는 발행 당시 주가보다 20~30% 할인된 가격으로 정해지는데다 주가가 떨어지면 이에 맞춰 전환가를 낮추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서도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주가가 1만원인 기업이 주당 20% 할인된 가격에 1,0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발행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1,000억원의 자금조달 효과가 발생하고, 투자자는 200억원 규모의 수익을 확보하는 셈이다.
발행 주간사 입장에서는 해외CB의 경우 국내 발행수수료보다 훨씬 높은 수수료를 챙길 수 있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다.
◆ 가짜 외자유치 어떻게 이뤄지나
해외증권을 발행하는 기업은 우선 주간 발행사를 선정한다.
주간사는 발행과 관련된 업무와 인수자의 물색까지 책임지는게 통례다. 특히 주간사는 은행 투신 증권사 등 국내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해외증권 인수자를 물색한다.
일단 인수자만 정해지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된다. 주간사는 국제채권결제기구인 유로클리어에 해외증권을 예탁하고, 인수자들은 유로클리어의 발행기업 계좌에 돈을 넣고 거래를 마무리한다.
중간에 페이퍼 컴퍼니를 끼워 해외증권을 인수토록 한 뒤 국내 매입자들이 이들로부터 해외증권을 사는 형식을 취하는게 일반적인 수법이다.
해외증권을 인수한 일부 국내기관은 이를 다시 일반 투자자에게 파는 일도 있다.
코스닥기업은 수도없이 유로공모시장에서 외자를 유치했다고 공시하고 있지만 이중 70% 이상은 국내 자금이 해외자금으로 둔갑한 경우라는게 증권업계의 지적이다.
◆ 사기 발행 사례
코스닥업체 B사는 지난해 10월 2,000만달러 규모의 CBㆍBW를 발행했다고 공시했다. 그러나 일주일후 B사는 CBㆍBW를 매입해 소각했고 대주주 지분만 30% 늘어나는 이상한 사태가 벌어졌다.
B사는 애초부터 A증권사와 짜고 회사돈으로 재매입할 것을 정해 놓고 허위 외자유치공시를 냈던 것이다.
증권사에 회사돈으로 CB를 나중에 매입하겠다는 내용의 이면계약을 맺고 전량을 증권사에 떠넘겼다. 증권사가 편법 발행을 부추긴 셈이다. 이 과정에서 주간사 증권사에 수수료 이외에 별도의 사례를 했다.
이러다보니 증권사들이 기업들의 해외CB 발행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혈안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6월 대형 증권사인 B사는 인터넷사업체인 코스닥 C사의 해외 CB주간사를 맡으면서 발행 물량 전체를 홍콩에 있는 현지법인에게 팔았다. 홍콩법인은 이 물량을 시가보다 30% 이상 싼 가격에 주식으로 전환해 국내 시장에서 매각했다.
이런 방법으로 B증권사는 주간사 수수료와 상당금액의 사례비, 주가매매에 따른 시세차익을 얻었다. 개인 투자자들도 기업들의 해외CB 매입을 통해 짭짤한 수익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멀티미디어 부품생산업체인 M사도 지난해 해외CB 750만달러 규모의 해외CB 공시를 냈다.
하지만 실제 수십억원어치의 주식을 전환한 것은 곽모씨 등 14명의 국내인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해외 유가증권이 주가 조작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유통업체인 S사는 지난 3월초 해외 CB발행을 통한 외자유치설이 퍼져 주가가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자 조회공시에서 '외자유치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이때 이 회사 최대주주는 자신의 지분 전량인 약 15만주를 장내에서 팔아 많은 시세차익을 거뒀다.
이병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