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노동시장 개혁, 상생의 길 있는가

근로시간·임금 등 내적 유연성 확대

비상시 양적 구조조정 피할 수 있어

노사 협약으로 위기 이겨낸 獨처럼

공존 위한 현명한 선택 내려야 할 때


방하남 노동연구원장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다. 고용의 주체인 기업은 영속성과 예측 가능성을 정상 경영의 본질적 요건으로 하고 있다. 경기상황이 지속적으로 안 좋고 불확실성이 높은 시기에는 두 가지 본질적 요건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 거기에 따라 고용의 안정도 흔들리게 된다. 고용에 대한 보호 장치나 제도적 울타리들이 어느 정도 막음막이 될 수는 있겠지만 기업의 토대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그것도 최후의 보루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글로벌 시장경제 체제에서 가장 확실한 고용안정 장치는 기업의 시장경쟁력이다. 무한 경쟁이 진리라는 얘기는 아니다. 현재의 글로벌 경제체제에 사는 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흔들리고 불확실한 시대에 기업과 노동조합은 공동의 생존전략을 찾아야 한다. 근로자 편에서는 직무능력 향상과 생산성 제고, 기업 측에서는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변화에의 적응력일 것이다.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가 가능하도록 기술과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임금직무 체계를 고령화 시대에 맞게 개혁해야 한다.


그러나 외부환경의 높은 가변성에 대한 일차적인 방어기제는 고용과 인력운용의 유연성을 제고하는 것이다. 고용의 유연성 제고는 양적 혹은 외적 유연성과 질적 혹은 내적 유연성 제고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양적 유연성은 기업의 내부인력에 대한 양적(인력)조정을 할 수 있는 요건과 절차를 유연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피할 수 없는 비상경영시에 동원되는 외적 유연성 도구이다. 보다 효율적인 방안은 평상시에 작동할 수 있는 내적 유연성 기제, 즉 노동의 투입(근로시간)과 노동비용(임금)의 유연성 제고이다. 근로시간과 임금의 질적 유연성 확보가 된다면 경영이 어려운 시기에도 일자리를 위협하는 양적인 구조조정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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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경제가 어려울 때 이룬 독일의 고용 기적 뒤에는 소위 하르츠법에 따른 노동시장개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하르츠 개혁 이전에 노사 당사자 간 임금·근로시간 협약을 통한 내적 유연성의 확대가 먼저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즉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노동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노사는 임금협약 예외조항(open clause)에 합의했다. 예외조항 도입으로 임금협약의 당사자인 경영진과 노동조합은 당해 산업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협약기준에서 벗어나 근로시간(노동공급)과 임금수준(노동비용)을 기업 사정에 맞게 유연하게 정할 수 있게 됐다. 1990년대 상반기 이후 독일 사업장에서는 수많은 노사가 임금협약 예외조항에 합의함으로써 조합원들의 고용 안정성을 위협하는 외적 유연성의 위험에 대처할 수 있었다.

내적 유연성 확대는 근로시간의 유연성 확대를 통해서도 이뤄졌다. 핵심적인 실현방법은 '근로시간 밴드모델'이라고 부르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확대 운용이었다. 경기와 시장의 수요변화에 따라 근로시간을 일정 구간 내에서 유연하게 정할 수 있도록 협약한 것이다. 시간적 유연성 확대는 근로시간계좌제의 운영을 통해 이뤄졌다. 근로자들은 일감이 많을 때 초과근로 수당을 요구하지 않았고 더 일하고 적립해놓은 근로시간을 불황으로 일감이 없을 때 사용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용주는 비용, 근로자는 소득의 안정화를 확보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고용안정도 달성될 수 있었다. 노사 간 합의를 통한 내적 유연성의 확보를 통해 기업은 더 강해졌고 강한 기업은 궁극적으로 근로자의 소득과 고용안정을 보장할 수 있었다.

우리 경제와 고용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노동시장개혁이 시대적 과제로 진행되고 있다. 동시에 노사정 간의 이해충돌과 사회적 갈등도 높다. 그러나 아무리 여건이 어렵다 해도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의 길은 항상 있는 것이다. 단지 사회적 파트너 간 상생의 길을 함께 찾으려는 의지와 노력, 그리고 현명한 선택이 없을 뿐이다. 독일의 성공사례를 보라.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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