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산업에 대한 가장 잘못된 시각 중 하나가 부가가치가 낮은 한계산업이라는 인식입니다.” 몇 년 전 한 건설단체가 주관한 세미나에서 건설관련 대학교수가 나타냈던 안타까움이다. 업계의 기술력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건설산업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단순히 땅을 파서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골조를 세우고 인부를 동원해서 건물을 짓는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건설 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는 큰 변화가 없는 듯 하다. 이는 단순히 사회적 인식에 머물지 않는다. 정부의 건설산업 정책 역시 1990년대 이후 답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오히려 대기업과 중소업체간 업역을 둘러싼 논란은 심화되고 있고 공공입찰 제도 역시 최선의 답을 구하지 못한 채 쳇바퀴 돌 듯 최저가 입찰과 PQ(사전적정성심사) 제도의 틈에서 어정쩡한 보완만 거듭하고 있다. ◇땜질식 제도 개선은 그만= 최근 정부는 ‘건설산업 선진화’를 목표로 공공입찰 등 관련 제도 개선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부동산 관련 제도 개선 역시 전반적인 구조개혁의 한 축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업계의 시선은 다소 냉소적이다. A사 관계자는 “건설업체 내부의 기업시스템은 다른 업계와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은 물론 웬만한 중견기업까지 협력업체나 자재ㆍ인력 관리 등은 이미 일정 수준 이상 올라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오히려 문제는 정부의 각종 입찰제도 등이 거시적인 산업발전 보다는 개별 상황에 주먹구구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데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덤핑 수주가 논란이 되면 적격심사를 강화하고, 담합이 문제가 되면 최저가 입찰제를 확대하는 식의 정책이 반복되다 보니 제도가 항상 현실에 뒤쳐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는 정부의 턴키ㆍ대안입찰제도 개선방안을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최근 일부 공공공사의 턴키ㆍ대안입찰 발주공사가 ‘담합’논란으로 시끄러워지자 급하게 내놓은 땜질식 처방이 아니냐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민간 연구소 관계자는 “정부가 건설산업 선진화를 소리 높여 얘기하지만 정작 각종 제도는 중장기적인 산업 경쟁력 강화 보다는 사태 수습용 규제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생의 묘를 살려라= “대형 건설사들이 중견ㆍ중소업체들의 고유영역까지 잠식하면서 업계를 고사시키고 있다.”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업역구분이 의미가 없다.” 참여정부 출범이후 지속적인 건설산업 선진화 방안이 추진되고 있음에도 대형건설업계와 중견ㆍ중소건설업계간 업역을 둘러싼 대립각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장 근본적인 이유로 ‘일감 부족’을 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이후 사회간접자본(SOC) 등 공공부문이 크게 위축된 반면 진입장벽 완화로 건설업체 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수주시장 여건이 크게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정부의 수송ㆍ교통ㆍ지역개발 분야 예산은 18조2,231억원으로 지난해의 18조4,235억원보다 오히려 1.1%가 줄었다.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최근 대형 건설업체들의 주택사업 비중이 매출의 30~40%까지 높아진 것도 공공부문의 SOC투자가 크게 위축된 것이 결정적 이유”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대형-중소업체간 업역을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상생의 묘를 살릴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정부와 지자체는 대규모 공사 발주때 중견ㆍ중소업체와의 협력체계 구축을 유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와함께 중소업계 역시 페이퍼컴퍼니 퇴출 등 적극적인 자정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금융’ 선진화가 키워드= “사업계획을 갖고 PF(프로젝트 파이낸싱)를 위해 금융권에 갈때마다 좌절감을 느낍니다” 어느 중견 건설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일단 업체의 신용등급과 사업지역만 보고 나면 구체적인 사업계획은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한 채 문전박대를 당한다는 것이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은 말 그대로 개별 프로젝트에 금융을 연계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단순 대출과 달리 금융권이 자본을 바탕으로 사업의 한 축을 담당하는 기법인 셈이다. 하지만 국내 현실은 무늬만 PF일 뿐이라는 게 건설업계의 목소리다. 엉뚱하게도 금융권이 PF를 일으킬 때 가장 먼저 따지는 것은 해당 프로젝트가 아닌 시공사의 신용등급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내 건설 PF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금융권의 보수적인 경영 방침이 결정적 요인”이라고 말한다. 수익은 내고 싶지만 리스크는 떠안지 않겠다는 회피 심리가 PF활성화의 걸림돌인 셈이다. S사 관계자는 “대규모 복합개발 확대로 과거와 같은 ‘대출’식 PF는 한계에 이르렀다”며 “선진 PF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때 건설산업도 한단계 도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택정책, 이대로 좋은가
이젠 ‘量대신 質위주’ 공급…땅값 잡아야 집값도 안정 가능 참여정부 출범이후 정부의 건설산업 정책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부문은 '부동산'이다. 지난 5년가까이 지속된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과거 1980년대말 집값 폭등을 전후한 정책과 견줘 볼 때 오히려 더 강력한 규제로 돌아섰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하지만 '집값 안정'이라는 목표 아래 지속된 부동산 정책의 성패 여부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정부가 집값 급등의 진원지로 지목한 강남 집값은 여전히 요지부동이고 서민들의 내집 마련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태다. ◇80년대식 수급시스템 답습 우려= 참여정부 이후 정부 정책의 가장 큰 전환점은 지난해 11ㆍ15대책으로 꼽힌다. 수요억제 일변도의 정책에 대한 한계를 인식하고 '공급확대'라는 새로운 카드를 적극적으로 꺼내든 시기다. 이 같은 참여정부의 공급확대책은 10여개 신도시 개발을 통해 연간 4만~5만가구 수준으로 떨어졌던 공급물량을 단계적으로 20만가구 안팎까지 끌어올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일단 양적인 측면에서는 수급 불균형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평가다. 하지만 공공 위주의 공급확대 드라이브 정책으로 민간의 역할을 지나치게 위축시키고 수요와 동떨어진 단순한 공급 확대는 여전히 문제점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집값 급등은 양적인 주택 부족 못지않게 입지와 품질을 갖춘 양질의 주택이 부족한 것도 주요 원인"이라며 "수요자의 욕구는 도외시한 채 양에만 치중한 정부의 공급확대는 현재의 주택시장 상황과 다소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논리'보다 '현실'적인 정책을= 오는 9월은 주택 공급시장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터닝 포인트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분양가상한제와 청약가점제 실시로 공급 체계의 일대 변혁이 이뤄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공과 민간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분양가상한제 적용으로 서민주거 안정을 위한 중소형 아파트와 대체수요가 주를 이루는 중대형 주택의 차별성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업체 관계자는 "서민에게 저렴한 값에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정부의 취지에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면서도 "하지만 이를 민간택지의 중대형 아파트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지나친 행정편의"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민간 중대형아파트에 대한 분양가상한제와 채권입찰제 병행 실시는 수요자들에게 가격 인하 혜택은 없이 주택 품질만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로 명목 분양가는 내려가지만 채권입찰제로 수요자들의 실질 부담은 별로 낮아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B사 관계자는 "민간 중대형에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면 결과적으로 수요자들은 이전과 비슷한 대가를 치르면서도 품질은 더 떨어진 주택을 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근본 원인은 '땅'이다= 전문가들은 집값 안정의 화두는 '땅'에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실적으로 땅값이 분양가의 60~70%에 달하는 현 가격결정 구조에서는 분양가상한제 등으로 시장의 왜곡을 바로잡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가 분양가의 합리적 조정을 위해 최근 발표한 새 기본형건축비 산정방안의 경우 당초 기대와는 달리 실제 인하 효과가 0.5~0.6%로 1%에도 못미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참여정부는 오히려 신도시와 행정중심복합도시, 지방혁신도시, 기업도시 개발로 땅값을 끌어올리는 원인을 제공해 왔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세제와 금융, 공급 등에서는 사실상 나올 수 있는 정책은 다 나온 상태"라며 "현 정부는 남은 임기동안 땅값을 안정시킬 획기적 방안 마련에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