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위기의 국민은행 <하>시련의 계절...이건호 국민은행장 단독 인터뷰

"최근 사고 명현현상으로 봐달라… 6월 전면쇄신안 내놓을 것"

나눠먹기 인사 이젠 없어 … 능력 위주로 조직 재편


KB국민은행의 악몽이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도쿄지점장 불법대출, 국민주택채권 원리금 횡령에 이어 올해에도 개인정보 유출사고에 1조원대의 허위입금증 발급 등 은행의 존립을 흔드는 사고들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국민은행 사고에 직원들은 물론 금융 당국과 국민까지 지쳐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대국민 사과문까지 발표하며 출구전략을 모색했던 이건호(사진) 국민은행장 입장에서는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7월 취임한 후 계속돼온 '사고대책반장'에서 벗어나 새해부터는 자기만의 색채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상처를 봉합하는 작업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언론과의 대면 인터뷰도 가급적 사양해왔다. 하지만 서울경제신문이 진행해온 '위기의 국민은행' 시리즈에 대해 지금 시점에서 국민에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바꿀 것은 바꾸겠다는 뜻을 밝히기 위해 인터뷰에 어렵게 응했다. 올해 잇따른 사고 이후 이 행장이 언론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9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 집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단독으로 만난 이 행장은 최근 다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함에도 타이트한 체크 무늬 양복을 갖춰 입고 일어서서 문 앞까지 나와 정중히 기자를 맞았다. 국민은행에 집중되는 비난의 화살에 지쳐 있을 만한데도 흐트러진 모습은 보여주기 싫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새해 들어서도 이어지는 국민은행 사고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다시 한번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명현현상'이라는 용어를 꺼내며 국민은행의 위기를 지켜봐달라고 부탁했다. 명현현상은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함'이라는 뜻으로 약이나 치료를 한 뒤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부작용 같은 반응을 말한다. "과거에 묵혀 있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표면화되고 있는 것으로 봐달라"는 것이다.

이 행장은 "우리가 너무 큰 이미지 손상을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보면 뭔가 확연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내부제도를 정비하고 고객에게 다가갈 것이고 고객과의 거래관계도 '스토리 금융'을 통해 지금껏 보지 못한 은행의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강조했다.

이 행장은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국민은행 개혁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첫째는 고객만족도를 높이고 둘째는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셋째는 해이해진 조직문화를 다잡는 것이다.

특히 각종 금융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조직문화를 개선하는 것과 관련해 감사실 주도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오는 6월 말까지 인사시스템 등에 있어 전면적인 쇄신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KB금융지주에서 큰 틀의 쇄신안이 마련됐고 이를 바탕으로 은행 감사실이 국민은행에 구현할 수 있는 인사시스템 등 조직쇄신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 KB금융지주가 내놓은 KB 조직쇄신안은 국민·주택은행 출신(2채널) 간의 평등주의 인사가 아닌 능력 위주의 인사시스템을 갖추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국민은행은 그간 채널 간의 갈등과 줄대기 문화로 조직이 흐트러지고 그 과정에서 내부통제력을 잃어 각종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이 행장은 이와 관련, "앞으로 나눠먹기식 인사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능력 위주 인사로 특정 은행 출신들이 독식하는 문제도 생길 수 있는 만큼 현저하게 한쪽에 불이익이 가지는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점 생기면 드러내놓고 털고 갈 것

이 행장은 조만간 시작될 금융감독원의 국민은행 검사에 대해서도 "감독 당국의 검사에 성실히 응하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들이 생기면 드러내놓고 털고 가겠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내부에서 사고를 감추고 쉬쉬하기보다는 이참에 묵혀 있던 문제들을 모두 정리하고 가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이 행장은 또 감사실 주도로 국민은행 조직쇄신안이 만들어지는 것과 관련, 최근 일각에서 불거졌던 정병기 국민은행 감사와의 불화설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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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장 취임 후 인사를 하면서 실제로 청탁을 정말 많이 받았고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계속 고민해왔습니다. 이후 임원회의를 통해 국민은행 인사시스템을 들여다볼 적임자는 감사라고 내가 직접 얘기하고 지시했습니다. 갈등설 등은 억측입니다."

그는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인 정 감사가 은행장의 결재서류까지 점검하는 체제를 만든 것에 대해서도 "불편할 것도 위축될 것도 없이 내 나름대로 의사결정을 하면 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행장은 사고수습대책과 더불어 고객과의 거래관계를 앞으로 확 바꾸겠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이는 취임 초부터 이 행장이 강조해온 '스토리 금융'의 핵심내용이다. 이 행장은 결국 고객이 맘을 돌려야 바닥까지 추락한 국민은행의 이미지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스토리 금융의 실체가 뭔지 헷갈린다는 질문에 대해 "고객과의 거래관계를 직원들이 설명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예를 들어 펀드를 팔았다고 하면 이걸 도대체 왜 팔았나? 우리 실적목표가 있으니까 이걸 팔았다, 이제 이런 거 하지 말자는 겁니다. 은행이 고객 상대로 무슨 판매를 하면 그게 장삿속인지 아닌지 고객이 더 잘 압니다. 수익이 안 되더라도 고객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게 뭔지를 찾아서 그걸 제공해주자는 것이죠."

수익 위해 상품 팔기보다 고객 생각하는 길 가겠다

이 같은 이 행장의 발언은 사실 지금까지 국내 은행들의 경영 방침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국내 은행들은 예대마진이 줄어들면서 그간 전방위적인 판촉활동을 통해 비이자상품의 수익을 늘리는 데 역량을 집중해왔다.

이 행장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은행들을 드라이브해온 선진 금융기법이라는 것이 사실 어떻게 하면 한 푼이라도 더 짜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고 고객을 공학적인 대상으로만 취급해왔다"며 "앞으로 국민은행 직원들에게는 뭘 팔아서 얼마나 수익을 냈다가 아니라 고객과 가까워지기 위해 무슨 활동을 했는지, 고객한테 그 상품을 왜 팔았는지에 대해 리포트를 내게 하고 이를 인사평가에 반영하는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행장의 이 같은 실험은 사실 국민은행의 경영여건에 비춰볼 때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국민은행은 한때 2조7,000억원 수준에 육박했던 순익이 지난해에는 8,000억원 수준까지 급감했다. 이는 경쟁은행인 신한에 한참 밀리는 것으로 고객 숫자만 가지고 리딩뱅크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이 행장은 하지만 국민은행이 가진 고객 포트폴리오에서는 스토리 금융이라는 실험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행장은 "국민은행의 고객 베이스가 2,860만명이고 활동고객이 1,250만명인데 1,250만명의 고객을 만족시켜서 그들이 은행에 1만원씩만 더 벌어줘도 1,250억원이라는 수익이 생긴다"며 "고객이 감동하면 은행 수익은 자연히 올라가게 돼 있고 고객 베이스가 넓은 국민은행에서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이 행장은 신한은행 등에 비해 국민은행의 비용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이 다른 은행에 비해 인건비가 많다는 얘기가 많지만 인건비와 물건비를 고객 숫자로 나눠보면 1인당 쓰는 비용은 현저히 낮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말하자면 고객 1인당 버는 것도 적고 인건비도 적은 구조인데 고객 1인당 수익을 조금씩만 늘려가면 고객이 많으니까 금세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당분간 소매금융 주력 해외진출은 긴호흡으로

이 행장은 당분간 리스크 관리 부문에 집중하면서 소매금융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부실 논란을 빚은 해외진출사업의 경우 처음부터 사업 체계를 다시 들여다보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는 "해외는 긴 호흡으로 준비해야 하고 급하게 하면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면서 "당분간은 리테일(소매) 중심으로 가되 국민은행이 강점이 있는 자영업 등 소호 분야에서의 성과를 늘려가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8,000억원 수준에 그쳤던 순익과 관련해서도 "올해 순익은 지난해치를 확실히 웃돌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지쳐 있는 국민은행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킬 방법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 듯했다. 너무 많은 사건들이 한꺼번에 터진 탓이기도 하다. 이 행장은 "결국 직원들의 사기를 올려줄 수 있는 강한 수단은 '우리는 남들하고 다른 길을 간다' 이런 사명감을 심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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