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대선주자에 듣는다] <3> 정몽준 前 한나라당 대표

■ 창간기획<br>"박근혜 대세론은 실체 없는 유치한 얘기일 뿐"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역구인 서울 동장구 영통시장의 한 호프집에서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호재기자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정기 수요집회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격려하고 있다.

임세원 기자

[대선주자에 듣는다] 정몽준 前 한나라당 대표 ■ 창간기획"박근혜 대세론은 실체 없는 유치한 얘기일 뿐" 동행 인터뷰: 임세원 기자 why@sed.co.kr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역구인 서울 동장구 영통시장의 한 호프집에서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호재기자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정기 수요집회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격려하고 있다. 임세원 기자 한나라·민주당 모두 정당 정치 못해… 지역 기반한 권력욕은 국민 속이는것친박 결집 이해되지만 너무 폐쇄적… 한국 정치·경제 20년째 정체 "답답"한나라 입당전까지 줄곧 무소속… 계파와 무관 얽매일 것 전혀 없어아산나눔재단 설립싸고 말 많은데 대권행보든 아니든 좋은일 아닌가… "아…난 또 누가 오신다고, 오랜만이에요." 보좌관은 인터뷰를 꺼려했지만 정작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듯했다. 지난 1997년 아버지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에 이어 2006년 자신이 직접 대선을 경험한 지 5년 만에 다시 대선 대장정에 오른 그로서는 그럴 만도 하다. 그를 만난 날은 장마 뒤 태양이 작열했다. 정 전 대표와의 동행은 서울 새문안길 언덕 위에 있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부터 시작했다. 오전7시30분. 아산정책연구원에서는 복지를 주제로 정 전 대표와 자문교수들 간 공부모임이 열렸다. 팬케이크와 소시지를 곁들인 조찬에 끝나자 교수 네 사람이 저마다 준비한 주제에 따라 발제하고 정 전 대표가 진행하는 토론이 이어졌다. 그는 "우리나라는 정치와 경제가 20년째 정체하고 있다"면서 "1987년 개헌한 지 20년이 넘었고 소득 2만달러가 된 지도 십 몇 년이 지났다"며 답답해 했다. 보편적 복지를 반대했지만 정치인으로서 대놓고 비판할 수 없는 현실도 토로했다. "국회의원들이 낸 법안을 다 시행하면 복지예산이 80조원이 든다"면서 "그러나 전부 늘리자는 판에 줄이자고 할 수도 없고…." 그와 제대로 대화할 수 있던 시간은 그날 저녁 지역구인 동작구 영통시장에서 열린 젊은이들과의 '2030 호프타임' 때였다. 그를 좋아하는 청년 40명이 한 치킨집에 그를 초대한 것이다. 정치에 관심을 가진 대학생과 대학원생, 영통시장에서 PC방을 하는 청년, 회사원 등 직업도 다양했다. 영통시장에 그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연예인을 만난 듯 신기해 하면서도 다가가지는 못했다. 치킨집에 모인 젊은이들도 쭈뼛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분위기가 어색하자 그는 "올해에 내가 육십 살이 되거든. 여기 있는 사람들과 거의 30~40년 나이 차이가 나는데 나는 아직도 학생 기분이 나죠. 형으로 생각해요"라며 맨손으로 통닭을 덥석 집어 젊은이들에게 나눠줬다. 기자도 끼어 앉아 젊은이들과 함께 질문했다. -한나라당이 젊은 층에게 인기가 없다고 하던데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의원을 좋아하는 이유가 뭔 거 같나. ▦젊은 사람들이 한나라당을 싫어한다고들 하는데, 젊은이들은 보통 정치에 관심 없어. 나도 대학 다닐 때 없었지. -대학 때 정치인을 꿈꾸지 않았나. ▦그때는 신문 정치면을 읽지도 않았다. 신문 자체도 잘 안 봤고.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 없는 것은 공급자인 정치인들이 수요자가 원하는 만큼 서비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 없는 것 같다가도 어느 때가 되면 중간은 없이 극단적으로 관심을 보인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현재 가장 주목받는 대선주자이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정치에 극단적일 정도로 관심을 많이 보이는데. ▦박 전 대표가 인간적으로 좋기 때문이지. 정치인으로서 영향력도 있고. 지금은 박 전 대표가 압도적인 1위지만 2002년에는 정 전 대표의 지지도가 높았다. 한때 두 사람은 신당 창당을 고민하기도 했다. 어쩌면 정 전 대표는 그때를 기억하며 역전을 도모하는 것은 아닐까. -2002년만 해도 정 전 대표의 지지도가 박 전 대표를 앞섰는데. ▦그때는 월드컵 때문이었고. -박근혜 대세론을 어떻게 보나. ▦미안한 말이지만 박근혜 대세론이라는 질문은 별로 좋지 않다. 대세론은 유치하지. 대세론이라는 게 박 전 대표에게 좋을 수도 있지만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내년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12월 대선에서도 한나라당이 어렵다. 세계경기가 어려웠고 우리나라가 잘 대응했지만 사람들은 외국에서 어땠는지는 관심 없다. 지난해보다 올해 더 살기 어려우면 바꾸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대선에서도 갈아치우려고 한다. -박 전 대표의 경우 이회창 대세론이 아닌 MB 대세론이라는 평가도 당내에서 나온다. ▦대세론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는 유치한 얘기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된 것은 그가 다른 후보를 압도해서가 아니라 정동영 후보가 못해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박 전 대표는 압도적인 1위이고 지지하는 사람이 많은 반면 정 전 대표는 대중적 인기는 있어도 정당 안에서 지지세가 적은데. ▦한나라당이 정당으로 잘하는 것 같나. 내가 보기에는 못하는 것 같다. 한나라당에서 당에 헌신하는 사람이 없다. 정당으로서 인재를 기르는 인스티튜트가 되지 못한다. 중국 공산당은 엘리트를 뽑아 육성한다. 거기는 공산주의니까 우리가 꼭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정당 정치가 안 된다는 것은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는 딱 세 가지다. 한나라당은 여당, 민주당은 제1야당. 한나라당은 영남당, 민주당은 호남당, 북한에 대해 한나라당은 그나마 원칙이 있고 민주당은 친북적이라는 것뿐. 둘 다 자기 지역에서 권력을 잡겠다는 욕망을 보이는데 그거는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그는 1981년 11대 국회의원 총선거 때부터 출마를 꿈꿨다고 한다. 그러다 12대 총선에서 무소속 출마를 노렸지만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무소속 출마는 곤란하다면서 반대해 단념했다. 그는 13대 총선에서 여당인 민주정의당 후보로 나서달라는 전 대통령의 부탁을 거절했고 15대 총선에서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여당 후보로 뛰어달라고 했지만 마다했다. 1990년대 초반과 1997년 정주영 전 회장의 대선 출마 때를 제외하면 그는 2007년 말 한나라당에 입당하기 전까지 줄곧 무소속이었다. 정당 정치를 지적하는 그의 말에서는 한국 정당을 향한 환멸까지 느껴졌다. -지역에 기반한 계파 정치, 캠프 정치가 문제인가. ▦우리나라의 목표가 남북통일인데 같은 당 안에서도 싸운다. 한나라당이 친이ㆍ친박인데 친이는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세력이니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결집력이 조금 풀어지는 거다. 친박은 경선에서 졌고 지금은 대선이 다가오고 대권에 가까우니 결집하는 게 이해되지만 너무… 지금 도당위원장을 뽑는데 다 계파 싸움 아니냐. 나는 무소속을 오래해서 그런 것에서 자유롭다. 다른 사람들은 뿌려놓은 게, 투자한 게 많아서 잘못인 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지만 나는 투자한 게 없으니 얽매일 게 없다. -친박계가 폐쇄적이라고 느끼나. ▦이만저만 폐쇄적인 게 아니지. 그때 한 대학생이 물었다. 의원님은 왜 한나라당을 택했나. ▦한나라당은 북한에 대한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6ㆍ25전쟁 때 태어났는데 (우리 군이) 부산으로 갔다가 압록강까지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면서 고생했다. 그때 낮에는 국군, 밤에는 공산군 편을 들었다가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나. 국정원에 친북 사이트를 신고했다고 자신을 소개한 다른 학생이 물었다. 한나라당이 6ㆍ15선언을 지지한다고 했는데 한나라당에 실망했다. 민주당과 차별점이 없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6ㆍ15선언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고 반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또 확실하게 찬반을 밝히기보다 어정쩡하게 있는 게 선거에 낫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실 내용을 잘 모르는 친구들도 있다. 곁에 있던 학생이 물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 화두인데 성장과 복지 중에 어떤 게 더 먼저인가. ▦그건 좋지 않은 질문이다. 성장과 복지 중 하나만 취하라는 것인데. 말하자면 자유와 평등 중 하나만 취하라는 질문과 같다. 자유와 평등 이 둘을 다 가져가야 한다.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줘야 하면서도 평등이 같이 가야 한다. 자유 속의 평등이 제일 좋다. -정 전 대표는 해외 외교무대에서 리더십을 과시하는 반면 국내 정치권에서는 해외만큼 알아주지 않는다.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나 유엔에서 일하는 게 대통령보다 좋지 않나. ▦내가 국내 정치권에서 활동을 많이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과 접촉할 일이 많지 않았다. 임 기자도 한나라당에 4년 출입했다지만 나랑 이렇게 오랫동안 얘기한 게 처음 아니냐. 오늘 이 친구들도 그렇고, 나를 어려워한다. 앞으로 계속 사람들과 많이 접하고 소통하면서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겠다. 그는 경제에서 내년 대선 해법을 찾고 있었다. ▦한국 소득이 2만달러이고 미국이 4만달러다. 국민들은 뭐니뭐니 해도 경제가 중요하다. 나는 경제전문가는 아니지만 경제학을 전공했고 기업을 경험해봤다. 국제정치학도 좋은 학문이고 경제학을 전공하면 미세한 부분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다. 경제학이 하드(hard)한 학문이다. 말랑말랑하지 않다. 기업경영도 말랑말랑한 게 아니고. 경제를 전공하지 않아도 상식적으로 풀면 된다고 하지만 전공하고 경험한 뒤 나오는 상식이 아니면 상식이 지혜가 되지 못하고 횡포가 된다. 상식의 횡포가 되면 밀어붙이기가 된다. -이 대통령을 기업인이라서 뽑았지만 국민들 기대에 못 미치지 않았나. ▦이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을 했다지만 국민들은 그가 기업인이기 때문보다는 서울시장을 잘해서 뽑은 것이다. 행정가로서 뽑은 거지. 호프타임이 끝나갈 즈음. 정 전 대표는 학생들에게 "오자마자 먹기만 하니까 어색하다. 다음에는 노량진에 새로 만든 잔디구장에서 축구 한 게임 하고 막걸리를 마시자"고 제의했다. 학생들과 한 팔씩 들어 하트모양을 만들며 사진도 찍었다. 그를 단지 유명인사로 알고 있는 국민들을 붙잡고 대선주자로 각인시키는 작업을 조금씩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정 전 대표는 아직도 대기업 오너라는 일반인의 인식이 강하다. 정 전 대표 본인은 돈을 많이 갖고 있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 어떻게 기여하는가가 중요하다고 했지만 서민에 대한 감각은 갖기 힘든 것 아닌가. 앞으로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좋은 방안을 답해달라. 나도 궁금하다. 계속 열심히 하겠다. -사람들이 정 전 대표의 정치적 소신보다는 재산에 관심을 갖는 게 억울하지 않나. ▦억울할 것은 없다. 사람들이 그런 것을 궁금해 하는 게 당연하다. 인터뷰를 하고 며칠 후인 지난 16일 그를 비롯한 범현대가는 5,000억원 규모의 '아산나눔재단'을 설립했다. 여기에 정 전 대표는 사재 2,000억원을 넣었다. 다시 만난 그에게 물었다. 사재출연은 대권을 향한 행보가 아니냐는 시선이 따라붙는 것도 무리는 아닌데. ▦대선 행보든 아니든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것 아닌가. 국민이 냉철하게 판단할 것이다. 대선만을 의식해서 한다면 나 자신에게 불명예고 내가 처량하다. 나는 스스로 '정치 노무자'라고 생각한다. 정치 노무자의 생활이 중요하고 보람 있지만 모든 게 정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가 전부라고 생각하면 '기계'가 되지 않겠는가. 정치판에 오래 있으면 인간성이 황폐해진다는 것을 스스로 견제해야 한다. 권력의지가 없어도 안 되지만, 넘쳐서도 안 된다. 우리는 정치과잉이 아닌가. -이번 사재출연으로 그동안 재벌가라는 편견에서 벗어났다고 국민들이 판단해줄까. ▦그렇게 됐다면 다행이다.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프로필 ▦부산(60) ▦서울대 경제학과 매사추세츠공과대 경영대학원 경영학석사, 존스홉킨스대 대학원 국제정치학박사 ▦13~18대 국회의원 ▦현대중공업 고문 ▦국제축구연맹(FIFA) 명예부회장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대선주자에 듣는다] 기획연재 전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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