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FTA이후 중산층을 키워라

과거 멕시코 사람들은 미국인을 가리켜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그린고(Green Go)’라고 불렀다. 19세기 중반 멕시코를 침략해 캘리포니아ㆍ뉴멕시코 등 오늘날 미국 남부 주(州)의 광활한 영토를 빼앗은 미국 정복자들이 녹색 군복을 입고 있었던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 ‘침략자들은 돌아가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오늘날 ‘그린고’는 미국 사람들을 일컫는 보통명사가 됐다. 옛날의 분노와 적대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미국인을 나타내는 가치 중립적인 단어가 됐다. 이는 미국을 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멕시코 경제구조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지난 94년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해 개방경제 전환에 성공한 후 멕시코 수출의 85%, 수입의 55%를 미국이 차지하고 있다. 미국이 호황을 누리면 멕시코 경제는 달리는 말에 날개를 다는 격이 되지만 미국이 불황에 빠지면 멕시코 경제는 거덜이 난다. NAFTA 체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철저한 폐쇄경제 체제를 고집했던 멕시코가 글로벌 자유시장 경제시스템 편입 이후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연간 4~5%의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고 매년 대미 무역흑자 규모를 키워가는 멕시코가 브라질과 함께 중남미 경제의 선두주자로 부상한 것은 NAFTA를 통한 시장개방에 힘입은 바 크다. 삼성ㆍLG 등 한국은 물론 글로벌 기업들이 미국과의 접경지역에 형성된 수출자유구역(마킬라도라)으로 몰려들고 있고 해외직접투자(FDI)를 늘리고 있는 것은 멕시코가 50여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시장개방을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FTA를 타결한 한국도 유럽연합(EU)ㆍ중국ㆍ일본 등과의 FTA 협상을 남겨놓고 있고 앞으로 협상 대상국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양자간 협상이든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다자간 협상이든 시장개방을 통한 무역장벽 제거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흐름이 됐다. 멕시코 북부의 마킬라도라 지역을 포함해 올해 3차례 멕시코 경제를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시장개방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산업과 계층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멕시코 무역위원회와 상공회의소 관계자, 대학 교수들은 하나같이 한국은 시장개방으로 소외될 가능성이 있는 계층을 지원해 중산층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웬디 커틀러 한미 FTA 미국 측 수석대표도 한국 농산물의 경우 10년간 장기이행 기간을 둬 한국이 이들 산업에 대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며 한국 정부가 철저하게 준비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향후 FTA 협상 대상국이 늘어남에 따라 피해가 예상되는 산업과 분야도 많아질 것이다. 멕시코 경제가 시장개방을 통해 안정된 성장을 이어가고 있지만 중산층 붕괴라는 ‘덫’에 걸려 절름발이 신세에 빠진 점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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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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