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10월 14일] "그래도 국무위원인데…"

"그래도 국무위원인데…" "해마다 가을이 되면 국정감사 자료를 준비하느라 다른 업무가 마비될 정도입니다. 그나마 올해는 4대강 덕을 많이 봤네요." 국토해양부의 한 중견 간부가 기자에게 사석에서 건넨 말이다. 국회의원실에서 요청 받은 자료를 만드느라 야근에 휴일까지 일한 것은 똑같은데 올해는 4대강으로 이슈가 집중되는 바람에 그나마 손쉽게 넘어갔다는 것이다. 국감기간이 되면 정부부처와 산하단체 등 피감기관들은 각 의원실에서 요청한 자료를 준비하느라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국감을 앞두고 기관장이 미리 예행 연습을 하는 것은 기본이다. 국감을 받는 날에는 기관 전체가 대입시험을 치르는 수험생과 그 가족처럼 끝날 때까지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하지만 국감이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정감사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국정(國政)의 공정한 집행 여부를 감사하는 헌법상의 고유 권리다. 입법부가 행정부의 업무 처리가 바르게 진행되는지, 정책 및 예산 사용상의 오류는 없는지 등을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자리다. 그러나 기자가 지난 10년 동안 국감을 지켜본 결과 국회가 과연 그 권리와 의무를 제대로 행사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특히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맥 빠진 국감이 진행되고 있다. 정치권의 무성의와 준비 부족으로 알맹이가 없다 보니 피감기관에 대한 흠집내기와 호통치기, 여야 간 정치공세를 벌이는 파행만 거듭되고 있다. 지난 11일 열린 국토부에 대한 국감이 대표적인 예다. 이날 국감은 왜 그동안 국감 무용론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축소판이었다. 의원들의 의사진행 발언으로 1시간이나 개회가 지연되더니 국감 중에는 국토부 장관에게"히틀러 시대의 장관, 홍위병" 운운하는 인격을 모독하는 발언이 나오며 여야 간 설전으로 번졌다."그래도 명색이 국무의원인데 너무 심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정작 국감 본래의 취지를 살리는 정책적인 질문은 실종됐고 그에 따른한 충분한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국감은 국회의 권리이자 의무다. 국민이 국회의원에게 국감이라는 권한을 위임한 것은 기관장에게 호통을 치고 정치 공세나 벌이라는 뜻이 아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관행이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그 권리를 다시 거둬들일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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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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