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부 눈치·환율 매달리다 시기 놓쳐" 金총재 "시간두고 판단해야"<br>"금통위원 6개월째 공석에 정책 기형운영" 비판<br>"弱달러 등 대응 위해 금보유량 늘려야" 지적도
| 김중수 한은 총재가 18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신상순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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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열린 한국은행 국정감사는 예상대로 '실기(失機)'와 '무기력(無氣力)'으로 상징되는 한은의 통화정책에 대한 여야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아울러 6개월째 공석인 금융통화위원 자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더불어 최근 환율전쟁의 와중에서 급증하는 외환보유액과 관련, 한국은행이 금 보유량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줄지어 제기됐다.
김 총재는 정치권의 이 같은 질타에 대해 "금리인상 실기 여부는 시간을 두고 판단해야 한다"고 맞섰지만 곳곳에서 곤혹스러움이 묻어났다.
◇우측 깜빡이 넣으면 우회전한다면서…=의원들은 먼저 김 총재가 밝힌 '우측 깜빡이를 넣으면 우회전한다'는 말을 문제 삼았다. 기준금리 인상 신호를 수차례나 보내면서도 실제는 움직이지 않아 시장 혼란을 부추기고 통화 정책의 무기력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이강래 민주당 의원은 "과잉 유동성이 한국 경제의 최대 암초로 등장해 물가 상승과 부동산 버블 형성 등을 부추기고 있다"며 "금리 동결은 한은이 정부에 종속된 결과로 '기획재정부 금리국 또는 남대문출장소'로 전락했다"고 일갈했다.
여당의 비판도 덜하지 않았다.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은 "김 총재가 여러 공식 석상에서 인플레이션 압력과 금리 정상화를 시사하면서도 금리를 동결하는 이율 배반적인 모습을 보여 시장에 충격을 주고 스스로 한은의 독립성을 훼손시키고 있다"고 지적한 뒤 "물가안정이라는 본연의 임기를 포기하고 환율 방어에 매달리는 바람에 서민들만 물가 상승의 희생양이 되게 했다"고 밝혔다.
나성린 의원도 "금리인상은 타이밍(시점)이 핵심인데 최근 통화당국이 원화 절상 기조에 따른 물가 안정 효과에 지나치게 안주해 타이밍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며 점진적인 기준금리 인상을 촉구했다.
김 총재는 이에 대해 "환율(하락)을 막겠다고 금리를 동결한 것은 아니다"라며 "대외 환경이 급박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전반적인 국가 경제의 안정을 위한 것으로 (금리인상) 실기 여부는 시간을 두고 판단해야 한다"고 답했다.
◇금통위원이 보은용 자리인가=금리와 함께 국감장의 이슈가 된 또 하나가 금통위원이었다. 6개월째 공석이 되는 바람에 통화 정책이 기형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는 것. 김성곤 민주당 의원은 "6월 지방선거 전에는 '낙선자를 위한 자리'라는 얘기가 나돌았고 최근에는 주요20개국(G20) 준비위원회 파견자(이창용 단장을 의미)를 위한 자리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면서 "청와대의 낙점을 기다리며 한가하게 자리를 비워둬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같은 당의 전병헌 의원도 "금통위원 6명 중 5명이 사실상 친정부 인사로 독립성 훼손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조배숙 민주당 의원은 "금통위원 한 명을 두는 데 국가적으로 3억원 이상의 국민 세금이 든다"며 "6개월간 공석이어도 금리 결정을 내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여태까지는 예산을 낭비했던 것이냐"고 질타했다.
김 총재는 이에 대해 "인사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며 금통위원 추천이 늦어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고려 사항이 있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이용섭 민주당 의원은 아예 금통위원 임명 때 국회 동의 또는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 정부의 금통위 열석발언권 폐지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금 보유량 늘려라=의원들은 또 금보유량을 늘려 달러 약세에 대응하고 수익성도 높이는 쪽으로 외환보유액의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구 한나라당 의원은 "중국의 경우 금보유고가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 정도 된다. 미국과 독일은 7% 정도다. 이에 반해 한국은 0.2%에 불과한 실정인데 적다고 생각되지 않나"고 물었다. 김 총재는 이에 "금본위제 국가와 비교하기는 어렵다"며 "외환보유액을 금으로 하느냐의 문제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답했다.
환율과 관련해 화두가 되고 있는 과도한 외국인 자금 유출입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강래 의원은 단기성 투기자금의 과도한 국내 유출입을 막기 위해 파생금융상품과 외환 거래 때 세금을 물리는 '토빈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총재는 "자본시장과 환율의 변동성은 경제 전체의 안정성을 해치는 큰 문제"라며 "(투기적 목적의 외국인 자금 유입은) 거시 건전성의 틀을 통해 어느 정도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