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판사가 쓰는 법이야기] <1> 우산 같이 쓰실래요

법원에 올때는 누구나 상처받은 사람들… 작은 배려와 관심 아쉬워


사법부와 국민간 불신의 장벽을 해소하는 소통의 장을 만들기 위해 '판사가 쓰는 법 이야기' 코너를 신설, 매주 연재합니다. 판사들의 진솔한 이야기와 그동안 전해 듣기 힘들었던 법정 안 이야기나 다양한 재판 에피소드를 통해 법원에 대한 막연한 오해가 풀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법조팀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면 가끔 그때 일을 떠올리며 혼자서 미소 짓곤 한다. 대학 1학년 때이던가. 그날은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이었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우산으로는 도저히 감당되지 않는 그런 비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새침데기 여고생 티를 벗지 못한 나는 수업은 절대로 빠져서는 안된다는 초등학교 때 이후 주입된 강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했나 보다. 그날도 재미없는 강의를 듣기 위해 강의실을 찾아 쏟아지는 폭우에 별로 도움도 되지 않는 우산을 받쳐 들고 교정을 걷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불쑥 내 우산 안으로 들어오며, “저, 우산 좀 같이 쓰죠?”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당황한 나는 나도 모르게, “우산이 작아서 저 혼자 쓰기에도 힘든데요”라고 말했다. 아차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그 남학생은 뒤도 안 돌아보고 벌써 저만치 뛰어가 버리고 말았으니. 괜히 미안한 마음에 왜 하필 작은 우산을 쓰고 있는 나한테 부탁할 건 뭐람,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그렇게 궁시렁거리며 결국 휴강된 강의실에 도착했던 기억이 난다. 만일 그 날 그 남학생에게 기분 좋게 작은 우산이지만 함께 쓰자고 했다면 혹시 누가 아는가, 근사한 데이트 신청이라도 받았을지. 판사생활 10년째. 이런저런 사건들을 보고 또 판결도 하면서 당사자들이 그때 조금만 마음을 달리 먹었다면, 상대방에게 약간의 배려만 하였다면 법원에 오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사건들이 있다. 최근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피고들이 길을 걷던 원고와 부딪힌 것이 시비가 돼 원고를 폭행한 사건을 접했는데, 원고는 그 사건의 충격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정신과 치료를 계속 받고 있는 상태였고, 손해배상은 한 푼도 안 받아도 좋으니 피고들을 구속시킬 방법은 없냐며 하소연 하는 것이었다. 사소한 시비 한번이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린 것이다. 그때 원고나 피고들이 먼저 사과하고 그 자리를 피했다면 지금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 텐데 하는 마음에 참 안타까웠다. 또 초등학생 아이들끼리 장난을 치다가 장난이 지나쳐 그 중 한 아이가 다친 사건에서 다친 아이의 부모는 아이가 다친 것도 억울하지만 상대방 아이의 부모가 그때까지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은 게 몹시 분하다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 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모 기업의 총수가 아들 때문에 고생했다는 것을. 그때 그 아들이나 종업원이 서로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만 하였더라면 그가 그렇게 되었을까. 그렇게 작은 일이 우리를 괴롭히고 그 작은 일이 결국에는 작은 일로만 끝나지 않듯 우리의 작은 배려와 관심이 우리를 감동시키고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것 같다. 후안 만(Juan Mann)이라는 호주청년이 시작한 ‘프리 허그’ 운동이 이제는 전 세계 사람들의 실천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소망과 사랑을 주고 있고, 그만큼 세상을 살만한 것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재판을 흔히 무슨 거창한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의든 타의든 법원에 오는 사람들은 상처 입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우선은 그들의 상처가 치유되도록 돕는 것이 법원의 역할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비바람이 비록 거세고, 우산이 비록 내 작은 몸을 가리기에 부족할 지라도 오늘은 그 우산을 누군가와 나누어 써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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