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9월 2일] 쌀의 정치·경제학

"콩을 삶으려고 콩깍지로 태우니 가마솥 안의 콩이 뜨거워 슬피 우는구나. 원래 한 뿌리에서 나왔건만 뜨겁게 삶음이 어찌 이다지도 급한고." 삼국지에서 조조의 아들 조식이 읊조린 '칠보시(七步詩)'이다. 형인 조비가 보위에 올라 자신에게 일곱 걸음 안에 시를 짓지 못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조식은 자신을 콩에, 형을 콩깍지에 비유해 비통한 심정을 표현했다. 결국 형의 마음을 움직여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분단 이후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과 오버랩돼 가슴이 찡하다. 일제의 폭압에 의해 처참한 식민지 생활을 수십년이나 감내한 것도 모자라 남북은 외세에 의해 분단된 뒤 수백만명이 희생된 끔찍한 전쟁을 치렀다. 냉전의 고통이 이어지다가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에서 공존을 모색하는 듯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결국 과거로 다시 돌아가버린 남북 정권의 현실을 칠보시의 조비에 비유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수많은 백성이 굶어 죽고 탈북 행렬에 오르는데도 중국에 손을 벌려 겨우 권력을 유지하는 김정일 정권에 1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재고가 넘쳐 쌀값이 폭락하는데도 북한동포에는 지원할 수 없다는 남측 정부의 옹졸함도 결코 작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지지고 볶는 과정에서 언젠가는 우리와 합쳐야 할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으로 전락하고 수년 내 우리가 감당하기 버거운 급변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분단체제를 효과적으로 관리해 평화와 통합의 기틀을 다녀나가지 않으면 나중에 기둥뿌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통일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게 우리 숙명이다. 이럴 때는 현 정부 들어 중단됐지만 남북 모두에 도움이 되는 쌀 지원을 매개로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킨 남북관계를 풀어갈 필요가 있다. 천안함 폭침사건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엄중한 책임을 묻되 수해와 기아로 고통 받는 북한 동포에게 인도적 관점에서 쌀을 지원하는 것은 분리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는 김정일을 돕자는 게 아니다. 우리 농민과 북측 동포를 살리고 통일비용도 줄여나가는 1석3조이기 때문이다. 물론 분배의 투명성은 기본전제이다. 아프리카와 중남미만 찾지 말고 쌀 지원 대가로 북측 광물과 광산개발권을 확보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주식인 쌀이 갖고 있는 정치ㆍ경제학을 잘 따져 남북관계 개선의 지렛대로 활용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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