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 최상책은 철저한 고증실력이야. 우리 젊은이들도 옛 문서하나 붙잡고 몇십년간 파고들 수 있는 끈기가 있어야 돼." 한국과 중국간 벌어져왔던 인쇄술 본가(本家) 논쟁의 최전방에서 활약해왔던 '성암고서박물관'의 성암 조병순 관장(84)은 북핵위기의 와중에서도 고서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고 했다. 동북공정 목적이 티베트에 대한 서남공정, 위구르에 대한 서북공정 등의 예를 볼 때 결국 '영토문제'로 수렴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고 했다. "아직도 고서는 두 손 모아 기도한 뒤 펴곤하지. 옛 문서는 하늘이 돕기 전에는 손에 넣을 수 없거나 발견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항상 정성을 쏟으려고 해왔어. 마스크와 장갑까지 챙기는데 마스크는 콧김에 훼손될까봐 그런 거고…." 조 관장이 동북공정 논란 속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현존 세계 최고(最古) 목판본인 '다라니경',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인 '직지심경'을 놓고 중국기원설을 제기해왔던 중국 주장들을 뚜렷한 물증으로 모두 막아낸 주인공이기 때문. "석가탑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당 무주(武周ㆍ702년) 때 중국 낙양에서 인쇄된 뒤 703년부터 신라에 전해진 것으로…." "베이징 도서관 소장 '어시책(御試策)'은 1341년~1345년 사이에 인쇄된 것으로 한국 직지심경(1377년)보다 오래된 현존 최고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모두가 중국이 제기해왔던 주장들이다. 그는 다라니경의 중국기원설의 경우 중국 유일의 여제(女帝)였던 측천무후(서기 625년~705년)가 재위기간 중 아버지의 이름(武士華)에 들어간 '화(華)'를 쓰지 못하도록 했다는 사실 하나로 근거가 없음을 밝혀냈다. 지명인 '화주(華州)'를 '태주(太州)'로 바꿀 정도로 이 문제에 신경썼던 시점에 석가탑 다라니경에 '華'자가 쓰였다는 사실을 밝혀내 측천무후 재위시절인 702년 낙양에서 간행돼 신라로 건너갔다는 중국 주장의 허점을 결정적으로 콕 집어낸 것. 금속활자 기원논쟁은 일본에 있는 '정가당문고'라는 한 박물관에서 '어시책' 원본을 직접 찾아낸 뒤 이것이 목판본이라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우리 측 승리로 끌어냈다. 조 관장이 직접 세운 성암고서박물관은 74년 11월 개관해 20여점의 국보나 보물급을 포함 약 7만여점의 옛 자료들을 보유하고 있다. "공대(한양공업대 건축공학과)를 나와 젊은 때는 건축업에 전념했는데 고서가 막 벽지로 쓰이더라고. 그래선 안된다는 생각에 고서들을 모으기 시작했어." 그는 귀중한 문화유산을 수집ㆍ보전해온 공로로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고 얼마 전 박물관 개관 30년을 기념해 후학용으로 '삼장문선대책연구'란 연구서를 펴내 또다시 화제를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