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안당국이 글로벌 제약기업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외국인 간부를 뇌물제공 혐의로 정식 기소했다. 영국 총리가 GSK를 위해 직접 구명운동을 하기도 했지만 중국 정부의 부패척결 칼날을 피할 수는 없었다.
15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중국 후난성 공안당국은 지난 14일 의사와 병원에 뇌물을 주도록 영업사원에게 지시한 혐의로 마크 라일 GSK 중국사업본부장과 간부 2명을 검찰에 기소했다. 신화통신은 GSK가 의사와 병원뿐 아니라 베이징과 상하이 지방정부 관계자들에게 뇌물을 공여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전했다. 공안은 기자회견에서 "GSK는 매출을 올리기 위해 병원과 의사·직원에게 수억달러에 달하는 뇌물을 줬다"고 밝혔다.
중국 공안당국의 GSK 뇌물수수와 관련된 수사는 지난해 7월 시작돼 10개월째 계속됐다. GSK의 뇌물수수와 가격담합이 드러나며 중국은 그해 8월 제약업계와 의료업계의 비리 적발을 위한 조사를 전국적으로 확대했다. 공상행정관리총국이 주도한 조사는 3개월간 이어지며 중국인 의사 500여명에게 28만달러 상당의 뇌물을 건넨 프랑스 제약회사 사노피 직원을 공개 수배하고 세계 최대 인슐린 공급업체인 덴마크의 노보노르디스크를 조사했다.
조사범위가 확대돼 200억위안(약 3조5,000억원)의 벌금폭탄을 맞을 위기에 처하자 GSK는 오는 9월 중국 사업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으름장을 놓으며 대항했지만 조사 강도만 높아졌다. 지난해 12월에는 데이비드 캐머론 총리가 직접 GSK 구명에 나섰지만 중국 정부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었다. 6년간 30억위안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는 GSK는 지난해 중국 내 매출이 7%가량 감소하며 결국 판매담당자에 대한 보상제도를 변경하고 강연이나 의료 관련 회의 출석으로 의사에게 사례금을 지불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발표하며 수습에 나서기도 했다.
중국 정부가 GSK 수사를 강하게 밀어붙인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우선 관행처럼 여겨져온 제약업계와 의료업계, 관련 공무원으로 이어지는 뇌물수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다. 실제 이번 GSK 수사과정에서 중국 공무원 4명이 뇌물수수로 검거돼 수사를 받고 있다. GSK가 시진핑의 부패척결의 최대 희생양이 된 셈이다.
또 다른 목적은 천정부지로 오른 중국의 약값을 정상화하는 데 있다. 소득증대와 사회안전망 확충으로 건강 관련 비용이 급격히 늘어나며 정부에도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맥킨지에 따르면 중국의 건강 관련 지출은 지난해 820억달러에서 2020년 1조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의약품 가격 부담은 중국 정부가 사회안전망 비용으로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고 자칫 물가상승의 주범이 될 수도 있다. 시진핑 정부의 의료개혁에 GSK 같은 다국적 제약사가 장애물이 되는 점도 검찰기소의 또 다른 배경이다. 중국은 의사 급여가 낮은 사회주의식 의료체계로 의약품 관련 부패가 만연됐고 다국적 제약사가 이러한 부패를 부추기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실제 이번 수사에서 공안당국은 GSK가 뇌물 제공에 필요한 자금을 대느라 약값을 올렸으며 심지어 다른 국가보다 7배나 더 비싼 가격을 책정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FT는 "GSK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강도 높은 수사는 시진핑 정부의 부패척결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며 "아울러 다국적 제약회사의 높은 의약품 가격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