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5월11일] 풀먼 파업


1894년 5월11일, 풀먼(Pullman) 객차회사 시카고 공장.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다. 미국 노동운동사의 분기점이라는 ‘풀먼 파업’의 시작이다. 파업의 시대적 배경은 1893년부터 시작된 불황. 객차와 화차를 제작하는 풀먼사가 5,800여 종업원 중 절반 이상을 내보내고 임금을 25~40% 삭감하자 노동자들이 뭉쳤다. 턱없이 높은 사택 사용료도 불만을 키웠다. 사내 적립금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노조는 협상을 시도했지만 사측은 무반응. 법원 중재신청도 마다한 사측이 노조간부 3명을 해고하자 바로 파업이 일어났다. 사태를 키운 것은 미국철도노조(ARU)의 동조 태업. 사측이 대화에 응할 때까지 풀먼사가 제작한 객차를 단 열차 운행을 거부하고 나섰다. 철도노동자 6만명의 동조 태업은 물류의 중추이던 철도망을 마비지경으로 몰고 갔다. 파업의 위력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연방정부가 개입하고 나섰다.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연방의 우편물 운송이 차질을 빚었다’는 명분 아래 육군 병력 2,000여명을 시카고 일대에 투입했다. 주지사의 공권력 개입 반대에도 연방군을 개별 사업장에 투입한 것은 위헌이라는 논란이 일었지만 법원은 ‘노동쟁의 금지 명령’을 내려 정부를 도왔다. 7월 말 군 병력이 연방군과 경찰ㆍ보안관을 합쳐 1만5,000명으로 늘어나고 ARU 지도부가 체포되자 파업의 불길은 급속하게 꺼졌다. 희생자는 노동자 13명 사망과 57명 중경상. 풀먼 파업은 급진적 경향을 보이던 미국 노동운동이 보수화하는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주요 노사분규에는 연방정부가 개입할 수 있다’는 선례도 남겼다. 기업인 간 결속력이 강해지고 인수합병을 통한 독점적 대기업이 탄생한 것도 풀먼 파업의 그림자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