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9월 16일] 전화위복

선물 안 주고 안 받기 캠페인. 명절이 다가오면 으레 한번쯤 나오는 이야기다. 관가뿐 아니라 요즘에는 민간기업에서도 들려온다. 부조리 소지를 아예 없애 깨끗한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다른 쪽을 생각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정을 나누는 것조차 막는 정서적 삭막함도 그렇거니와 소비가 줄어드는 문제가 있다. 소비위축은 경기회복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선물 주고받지 않기의 명과 암이다. 세상사가 모두 그렇다. 하루 산다는 것이 바꿔 말하면 죽음에 하루 더 다가간다는 의미이듯 어떤 일이든 이렇게 양면성이 있는 것이다. 총리 후보자와 두 명의 장관후보자가 낙마한 실패작 개각과 뒤이어 터진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특채 사건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ㆍ정부의 체면은 여지없이 구겨졌고 정치적 타격도 컸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재보선 승리로 힘겹게 되찾은 정국주도권이 약해져 임기 후반기가 시작부터 매끄럽지 않게 됐고 국정운영에도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젊은 총리를 내세워 꾀하려 했던 세대교체 구상도 어그러졌다. 개각실패ㆍ외교부 특채사건의 명암 그렇다고 온통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MB로서는 얻은 것도 있다. 무엇보다 그 일들이 소통의지를 조금은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엉망인사와 소통은 앞뒤가 안 맞는 얘기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인사청문회에서 여러 문제가 드러난 후보자들이 자진사퇴하자 MB는 다른 소리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외교부장관 사건도 일이 터지자마자 엄정조사 지시와 문책인사로 신속하게 처리했다. 첫 조각 때 상황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그 당시 편중인사에 대한 비판이 비등하고 여러 후보자들의 흠집이 봇물처럼 터져 나와 지금보다 논란이 훨씬 심했다. '고소영' '강부자'가 MB인사의 상징어가 됐을 정도였다. 그래도 MB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며 후보자들을 감싸고 그대로 밀어붙이려 했다. 나중에 물러서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독선적이라는 이미지가 깊이 새겨졌고 이는 국정수행에 두고두고 짐이 됐다. 광우병 촛불시위로 나라가 무정부 상태에 빠지다시피 한 것이나 세종시 수정안 무산, 4대강 사업의 어려움, 지방선거 참패 등도 따지고 보면 첫 조각 실패, 더 정확하게는 MB의 일방통행식 사고와 자세가 그 출발점이자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고 불신의 골이 깊이 파였으며 이에 따라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일도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험로를 걷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그때와 달리 신속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여론에 귀를 기울이고 눈높이를 국민의 기대수준에 맞추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결과 MB정부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소통부재 이미지 해소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MB를 삐딱하게 여기던 사람들 가운데 '이제 좀 달라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여론조사 결과 국정수행 지지도가 별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소폭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첫 조각 파동 때 지지도가 큰 폭으로 하락한 것과는 딴 판이다. 소통 강화, 입보다 귀가 더 중요 잘못을 했지만 그걸 지적하는 소리를 받아들임으로써 소통 실천과 불신해소의 단초를 마련하는 효과를 거둔 셈이다.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될 것 같지 않던 일이 실패를 통해 이뤄졌으니 전화위복이다. 그러나 진정성과 신뢰회복의 길을 열기는 했지만 그 길은 아직 윤곽만 있는 오솔길이다. 자주 다니지 않으면 금방 사라지고 만다. 더 크고 평탄한 길을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부단한 왕래, 즉 소통강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임기 후반기 국정 철학이자 목표인 '공정한 사회'도 가시밭길을 걷게 될 수 있다. 소통에는 입보다 귀가 훨씬 중요하다. 곡절 끝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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