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시체위에서 피는 꽃들
정승량 schung@sed.co.kr
“한국인은 TV를 죽일 것입니다(Korean will kill TV).”
‘텔레코즘’과 ‘마이크로코즘’을 썼던 정보기술(IT) 석학 조지 길더가 지난 2004년 방한 때 했던 이 발언은 3년 후 한국 TV, 혹은 세계 TV의 미래를 정확히 예언한 셈이 됐다.
길더가 한국인이 죽여 없앨 것이라던 TV는 전파나 케이블을 통해 일방적으로 뿌려졌던 ‘브로드캐스팅(broadcasting)형’ TV를 말한다. 브로드캐스팅은 내로캐스팅(narrowcasting)을 거쳐 손바닥이나 인터넷으로 들어와 개인맞춤형으로 급속히 진화해 ‘TV 2.0’ 시대를 낳았다. “구텐베르크 이후 가장 강력한 미디어 변혁기”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쌍방향 디지털TV와 데이터방송, 지상파와 위성DMB, 실시간 내비게이션(TPEG), 모바일콘텐츠, MP3P, 전자책, 온라인게임, 사용자제작콘텐츠(UCC), 인터넷TV(IPTV) 등 새 미디어와 콘텐츠로 넘쳐난다. 그 중심에 인터넷이 있고 인터넷은 모바일미디어를 통해 유비쿼터스형 한국인을 만들어내고 있다.
박수를 보내고 싶은 것은 시장의 개척자들이다. 7월4일 서울 플라자호텔. KT의 IPTV인 ‘메가TV’ 발표회에 나타났던 이 회사 윤종록 부사장, 이영희 상무 등의 얼굴이 떠오른다. 특히 “이제 개척기”라며 “새 역사의 증인이 돼달라”던 그날의 이 상무 모습과 “‘그게 되겠냐’는 내부비판이 더 아프다”던 불과 1년쯤 전의 이 상무 얼굴이 오버랩돼 참 묘했던 기억이 새롭다. 말만 많고 결과는 없다 해서 ‘입TV’라 불렸던 KT의 IPTV가 불완전하나마 출발하는 순간이다.
세계 최강이라는 한국의 인터넷산업은 ‘시체 위에서 핀 꽃’이라는 게 정설이다. ‘네이버’와 ‘다음’이라는 걸출한 두 기업을 배출하기 위해 천리안ㆍ나우누리ㆍ하이텔 등 얼마나 많은 모르모트(marmotte)가 필요했던가. IPTV가 어떤 꽃을 피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전례처럼 수많은 시체들 위에서 피어날 것이라는 것만은 장담한다. 결과와 관계없이 윤 부사장과 이 상무 등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은 것도 이 때문이다.
입력시간 : 2007/07/15 1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