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신경썼더라면,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사건을 제대로 해결했을 텐데…'
대검찰청이 일선 검사들을 상대로 `올 한해 가장 아쉬웠던 사건'을 수집해 29일발표했다. 이는 과거 노력이 부족하고 판단이 잘못됐음을 겸허하게 반성함으로써 새로운 출발에 필요한 교훈을 얻으려는 의도다.
◇ `제2의 범행 못막아…' = 제주지검 부상일 검사는 스토킹 피의자의 `제2의범행'을 예방하지 못한 것을 `반성 사례'로 꼽았다.
A(여)씨는 2004년 12월 동거남 B씨의 잦은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결별했다. 하지만 B씨는 A씨를 스토킹하거나 집에 침입, 납치해 감금하는 등의 방법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A씨의 피해를 접수한 검찰은 B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피의자가 반성하고 있고 A씨의 주장이 과장됐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기각됐다.
B씨에 대한 불구속수사가 진행되던 올 6월 보복을 우려한 A씨가 친구가 있던 경주로 피신해 새 남자친구를 사귀게 됐다. 이 사실을 알게 된 B씨는 남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했다.
부 검사는 "첫번째 범행이 우발적인 게 아니라 정신병적 집착 때문이라는 사실에 주목해 B씨를 구속했더라면 제2의 범행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 `피해자 보상 못해줘서…' = 서울중앙지검 김국일 검사는 회사 인수를 미끼로 1억원을 가로챈 사기범 수사가 지연돼 결국 피해자가 보상을 받지 못한 사례를 들었다.
미국 LA에서 생활하다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을 갖고 있던 K씨는 1998년 지인의소개로 음향기기 제조업체를 운영한다는 H씨를 만나 "전도유망한 회사가 있는데 다른 회사 경영에 전념하려고 이 회사를 팔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유명 중견기업과 금융기관이 대주주이고 사업성도 좋다는 H씨 말만 믿고 덜컥계약금 1억원을 줬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회사는 종업원들이 1년 넘게 임금을 못받고 부실 어음이 남발된 회사였다.
K씨가 항의하자 H씨는 "계약금 돌려주면 될 것 아니냐"며 화를 내더니 1년 내에1억원을 갚겠다는 각서만 써준 채 돈을 갚지 않았다.
결국 K씨가 2002년 H씨를 사기죄로 고소하자 H씨는 검찰에서 "K씨가 부인의 반대로 귀국을 못하게 되자 1억원을 돌려받으려고 나를 무고한 것"이라며 반박했고 조작된 서류를 증거로 제출한 뒤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검찰은 오랜 시간을 들여 H씨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를 수집해 공소시효 5일 전H씨를 체포해 기소했지만 이미 K씨는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고 이 사건 때문에 부부사이가 나빠져 별거하게 됐다는 소식만 들려왔다.
김 검사는 "3년여 동안 H씨의 죄상을 밝혀 엄히 처벌하지 못한 점을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 `공소시효 때문에…' = L(75)씨는 부모가 가출한 홍모군과 홍군 여동생의 보호자가 돼주겠다며 1996년 10월 충남 보은군청에 홍군 남매를 소년소녀 가장으로 등록시킨 뒤 이들에게 나오는 국고보조금을 자신이 관리하면서 횡령했다.
그는 이 지역사회에서는 상당한 재력가로 알려져 있었지만 1996년 11월부터 2002년 3월까지 홍군 남매에게 나온 국고보조금 4천100만원을 횡령하는 등 파렴치한 범행을 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검찰이 L씨의 범행을 발견하고 기소하려 했을 때는 이미 횡령액 4천100만원 중 3천200만원 부분은 공소시효가 지난 상태였다.
청주지검 김성은 검사는 홍군 남매의 국고보조금을 가로채 자신의 배를 불린 L씨를 구속하고 싶었지만 고령에 건강이 나쁘다는 이유로 불구속하게 되고 900만원횡령혐의만 처벌하게 된 이 사건을 가장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