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내수살리기 시험대 선 이주열… 발권력 동원하나

9일 '원포인트 긴급 경기대책회의'

정부 "돈 더풀라" 요청 잇따라

중소기업·지방기업 지원 위한 금융중개지원대출 확대 유력

한은 발권력 남용은 논란될 듯




정부가 내수부양을 위한 카드로 한국은행의 자금지원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발권력 동원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정부 경기진작책에 얼마나 협조적으로 나올까를 관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총재가 첫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9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긴급 민생대책회의'에서 세월호 참사로 침체된 내수경기 진작을 위한 대책에 한은의 발권력이 동원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중소기업과 지방기업 지원을 위해 금융중개지원대출(옛 총액한도대출)을 늘리는 방안이 가장 유력해 보인다. 정부는 다양한 경로로 한은에 돈을 좀 더 풀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민규 한국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실장은 "한은이 9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 인하까지는 아니더라도 발권력을 동원한 부양책을 내놓을 수 있다"며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도 한은은 발권력을 동원, 긴급자금대출 프로그램을 실시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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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권력 논란에 더 관심이 쏠린 것은 이 총재가 정부의 구원요청에 '성의'를 보일 수 있는 첫 기회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취임 이후 첫 금통위 데뷔 무대를 무난하게 통과한 이 총재 입장에서는 정부부처들의 내수 살리기에 동참할지, 정부의 요청을 뿌리칠지 갈림길에 서게 됐다. 물론 한은은 공식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하지만 금리 인하가 어려운 상황에서 한은이 정부의 협조요청을 외면할 가능성이 다소 낮아 보인다는 게 한은 안팎의 시각이다. 내수회복의 길이 어려운 것을 뻔히 아는 이 총재가 한은의 독립성을 내세워 취임 초기부터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더구나 한은은 국가재난시 발권력을 동원해 부양책을 마련한 경험도 있다. 1995년 7월 한은은 금융기관이 삼풍백화점 붕괴 관련 피해업체에 지원하는 자금을 총액한도대출 대상자금으로 특별히 인정하고 대출실적의 45%를 저리로 지원했다. 2003년 9월에도 태풍 매미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 등에 총액대출한도 중 배정유보분 850억원을 뿌리기도 했다.

문제는 정부가 필요할 때마다 너무 쉽게 한은의 발권력을 남용한다는 점이다. 재정난에 시달리는 정부 입장에서는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한은 자금이 상대적으로 만만하다. 이 때문에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면 한은이 끌려가듯 뒷감당을 하는 구조가 반복돼왔다. 올 3월 한은은 가계부채 해결을 위해 주택금융공사에 4,000억원을 출자하고 주택저당증권(MBS)을 환매조건부채권(RP)매매 대상증권에 포함시키면서 발권력 논란을 빚었다. 지난해 7월에는 회사채시장 정상화 방안에 한은 자금이 동원되면서 발권력으로 일부 사기업을 지원한다는 특혜 시비에 시달리기도 했다.

금융중개지원대출 자체가 과거 정책금융 성격이 남아있는 것으로 한은이 선진국형 제도로 가는 '과도기적 형태'라는 점 또한 논란거리다. 2011년 한은법 개정으로 '금융안정' 조항을 추가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정부가 한은의 발권력을 손쉽게 동원할 수 있는 빌미만 제공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송 실장은 "세월호 사태에 따른 경기부양을 위한 가장 깨끗한 방법은 정부재정을 통해 하는 것"이라며 "이게 여의치 않으니까 한은이 정책자금을 건드리는 것이고 발권력 동원에 대한 논란이 시작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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