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남북·남남화해 '미얀마 모델'서 배우자


미얀마에서 개혁·개방이 시작된 지난 2011년 한 국제학술지에 수하르토 치하의 인도네시아와 미얀마를 발전국가의 시각에서 다룬 미얀마인 학자의 논문이 게재됐다.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는 국내외 학자들이 한국의 박정희 집권 시기에 적용한 개념으로 일본 연구자인 차머스 존슨이 기초를 다졌고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이른바 '동아시아 모델'을 설명하는 강력한 이론적 개념이 됐다.

사회주의 군부서 민간이양 성공

발전국가론은 개발 없는 독재 체제를 경험한 제3세계 국가들과 대조되는 한국·대만 등 1세대 신흥공업국의 '경제 기적'과 '개발독재'에 주목했다. 특히 신흥시장으로 간주되는 중국·베트남 등 아시아 사회주의국가들의 개혁·개방도 발전국가의 맥락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힘을 얻고 있다. 이들의 변화는 '규율 있는 전환(orderly transition)' '감압(decompression)'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개발 없는 독재 체제보다 개발 있는 독재 체제가 낫다는 가치판단을 부정하지 않을 경우 이들 사회주의 체제의 변화는 분명 퇴보가 아닌 진보다.


'미얀마 모델'도 이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특히 미얀마는 역사적으로 북한과 적지 않은 유사성이 있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 화해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식민주의 혹은 신식민주의를 경험한 권력 엘리트들이 자력갱생을 향한 '비자본주의 발전 노선'을 실험했다는 점, 그 결과 국제사회에서 가장 고립된 개발 없는 독재 체제로 추락했다는 점, 미국에 '폭정의 전초기지'로 분류되면서 전면적 외교제재를 받아야 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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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미얀마 군부 엘리트들이 수하르토 치하 인도네시아 모방에 나서면서 마침내 '규율민주주의'로의 이행 로드맵 마지막 단계로 아웅산수치와의 역사적 화해를 이끌어낸 테인 세인 정부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이 변화는 군부의 정치규율을 특권화한 2008년 헌법하에서 진행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미얀마 군부가 내건 이른바 '규율민주주의'는 군의 이중기능, 즉 안보 역할과 정치사회적 역할을 제도화하면서 인도네시아를 2세대 신흥공업국 반열에 올려놓은 수하르토 개발독재 체제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시도를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이 서구 강대국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포용을 통한 변화' '건설적 관여'의 관점에서 지지해줬다는 점이다. 현재 미얀마의 변화가 아세안만의 기여라고 할 수는 없어도 '미얀마 위기'를 오랜 서구 식민지 경험 속에서 각인된 불간섭주의, 주권동등의 가치를 내면화한 '아세안 방식'의 성과이기도 함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北에 발전국가모델 수용 유도를

한반도로 시선을 돌려 북한에 대해 '미얀마 모델'을 따를 것을 주문하는 미국 수뇌부의 의중을 염두에 두자면 한국 정부는 아세안 방식을 참작해 북한 지도부에 '규율 있는 이행'과 '감압' 조처, 다시 말해 발전국가 모델을 수용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이는 남한 보수진영이 강조하는 한국 민주화를 가능하게 한 개발독재 체제하의 산업화를 북한에서도 가능하게 하는 전략이다. 물론 이는 진보진영의 '햇볕정책'을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다.

남한의 진보진영 역시 햇볕정책이 지원하는 발전모델이 한국형 발전국가에 해당하는 박정희 개발독재 체제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할 때 '미얀마 모델'의 한반도화는 남북갈등·남남갈등을 풀 수 있는 중대한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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