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 10일, 뉴욕 증시의 나스닥 지수는 5,048.62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닷컴` 또는 `넷`이라는 이름의 회사는 뉴욕 월가의 돈을 빨아당겼고, 20대 젊은이들이 백만장자가 되는 시대였다. 인터넷으로 항공기 예약을 하는 회사의 시가총액이 미국 3대 메이저 항공사의 시가총액 합계보다 커지는 기 막힌 현상이 벌어졌다.
그로부터 정확히 3년후인 10일에 나스닥 지수는 1,278.37로 마감, 최고치 대비 74.7% 추락했다. 지수상으로 4분의3이 잘려 나간 것이다. 거품처럼 부풀어올랐던 인터넷 회사는 도산했고, 살아남은 정보통신(IT) 회사들도 생존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 3년간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서 미국은 2001년 경기침체와 테러참사, 2002년 회계부정사건등 많은 사건에 휘말렸다. 3년전에는 기술주가 최고였는데, 지금은 채권이 더 매력적이다. 미국 경제의 걱정은 3년 사이에 인플레이션에서 디플레이션으로 바뀌었다. 초강세를 보이던 달러는 맥없이 하락하고, 금융시장에서 퇴출위기에 몰렸던 금이 귀중한 상품으로 부상했다. 주식 애널리스트는 혐오의 대상이 됐고, 지정학적 리스크를 분석, 투자 판단에 도움을 주는 정세분석가가 인기를 끌고 있다.
뉴욕 증시의 거품 붕괴는 10년 시차를 두고 일본의 궤적을 따라가고 있다. 1989년 연말에 일본 닛케이 지수는 4만 포인트를 돌파할 기세로 치솟았지만, 해가 바뀌면서 가라앉았고,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8,000 포인트 붕괴 직전으로 떨어졌다.
2000년초의 뉴욕 증시의 거품은 대공황 직전인 1929년 대공황 직전에 형성된 거품보다 높았다. 하지만 주가하락에도 불구, S&P 500 종목의 주가수익률(PER)은 아직도 3년전과 같은 수준(29)이다. 주가 하락만큼 기업 수익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워렌 버핏 회장이 뉴욕 증시가 아직 비싸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선 80년대에 미국을 꺾고 세계 최강의 경제국가가 될 것이라는 자부심이 주식시장의 거품을 형성하는데 기여했다. 90년대 공산권 붕괴후 앞으로 더 이상 미국에 도전할 나라가 없다는 자만심이 뉴욕 증시 거품 형성의 심리적 배경이 됐다. 하지만 거품은 꺼지는 법이다. 아울러 자국 우월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국민적 자만심도 경제의 거품과 함께 국제적으로 거센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뉴욕=김인영특파원 inkim@sed.co.kr>